■ 출판인생 30년을 돌아보며...


                                   

가는 계급이 없어서 좋다.
소장 위에는 대장이 있고, 대통령 위에는 국민인 유권자가 있고, 대기업의 회장 위에는 고객이 있지만 작가 위에는 가난함과 공허만이 있을 뿐이다. 제대로 된 히트작 하나 없는 내가 그래도 졸작을 신주단지 모시듯 내세우며 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 아버지는 해방과 동시에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남쪽에서 교직생활을 하셨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고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인 북청 땅에는 가지 못하고 홀로 남겨지게 되셨다. 그 후 이북 고향 땅에는 마음으로만 다녀오셨고 먼발치에서 고향을 바라보실 때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시곤 하셨다. 평생 직업으로 20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계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는데, 나에게 남겨진 재산이라고는 한쪽 벽을 가득 매운 케케묵은 책들이 전부였다.

4대 독자였던 나는 일찍이 17세부터 가장이 되어 세 살 위인 누님과 홀어머니를 모시며 모든 어려움을 짊어져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에 신문사를 거쳐 이름도 생소한 출판사에 입사했다. 그 곳에서 나의 첫 소임은 말단 교정직이었는데 10년을 넘게 근무하고  있던 편집부장이 200자 원고지 한 묶음을 내 책상 위에 던졌다. 대단한 악필로 깨알처럼 갈겨쓴 그 원고를 보고 눈앞이 아찔했다. 뭐라고 썼는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어서 밤을 새워가며 눈이 빠져라 교정을 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흘렀다. 그때는 정말 하찮은 일을 하면서 세월을 패고, 젊은 시간을 죽였다.
남들은 원대한 꿈을 꾸며 달리고 있을 때….

                                                   

5백여 년 전 폭군 연산군이 장녹수를 끌어안고 음주가무를 즐겼을 나이에, 나는 종로서적에서 주문 들어온 몇 권의 책을 새끼줄(당시 제대로 된 포장끈이 없었다)에 묶어서 왕복 토큰을 받아 쥐고 배달을 다녔다. 4백여 전 세익스피어가 비극의 임금 <리어왕>을 발표했을 때,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마실 술값을 벌려고 남의 저서를 대필해 주곤 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밤 새워서 쓴 말도 안 되는 책이 대박(?) 나는 바람에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지금 50대 초반의 나이에 30년 경력의 출판인으로 또한 작가로 살아온 세월 속에서 머리는 백발로  변했고 마음은 공허만이 맴돌고 있다. 문득문득 살아온 길을 뒤돌아 볼 때마다 ‘뭐를 했단 말인가’하는 인생무상의 회한이 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하는 것은 몇 권의 졸저들이다. 그것들을 끌어안고 있으면 대기업 총수나 위정자가 부럽지 않다. 내 졸저들을 꺼내어 몇 줄을 읽다보면 애잔했던 추억이 되살아나고 풋풋한 가슴으로 변한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던가.
빈손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마감할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내 비록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모 신문사에 기고한 사설들을 모아 놓은 묶음과 몇 권의 저서로 나는 평생 아버지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으며 어려운 삶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 졸부로 살다 가고 대통령으로 살다 간들 죽으면 남는 것은 이름 석 자가 전부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계급이 없고 나를 막을 수 없는 작가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30년 전 하늘과 똑같이 공허하다. 그래서 나는 좋다.

한솜출판서비스 대표
김태일 실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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