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봉(한국풍자문학회 회원)
<풍자문학의 창간을 축하하며>
풍자 (諷刺)라 함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어떤 사실에 빗대어 날카롭게 폭로하고 조소한다는 의미이다. 그 빗댄 사실이 때로는 본질과 동떨어진 뜻밖의 것이라 웃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하고, 웃음을 짓는 속에서도 긁어주었으면 하는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어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비판이 면전에서 직설적으로 핀잔을 주는 것보다는 격조가 있어 부조리를 저지른 자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깊이 뉘우치게 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아무튼 풍자는 부조리와 부정부패에 가득 차 짜증나는 사회에 서민에게는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주고, 부정을 저지른 자에게는 가슴 뜨끔할 만큼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비수(匕首)와 같은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부조리한 양반사회를 신랄하게 고발한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양반전> <호질> 등이나, 요즘의 패러디 (parody) 작품은 바로 풍자문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의 핵심은 냉철한 사회인식과 사회적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풍자문학은 사회참여문학의 백미(白眉)요, 꽃이라 할 수 있다.
풍자문학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역사상 인물이 있다면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다. 알다시피 매월당은 수양대군이 쿠테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사심을 채우기 위해 여기에 야합한 자들이 권세를 누리자, 가치가 전도된 부조리한 세상을 한없이 개탄하고 조소하며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굽히지 않고 올곧게 한평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또한 공신전이 남발되면서 허세에 찬 지배계층이 더욱 배를 채우는 반면, 뼈가 빠지게 일하는 농민은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모순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뇌한 선지식인이다.
이런 매월당의 현실비판 중에 세조 쿠테타의 주동자인 한명회를 꾸짖은 일은 풍자의 백미가 아니 할 수 없다. 한명회는 나이가 들어 정계에 은퇴하면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할 요량으로 지금의 서울 압구정동의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멋지게 써붙이었다.
청춘엔 사직을 붙들었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노라 (白首臥江湖)
이에 어느날 압구정을 들른 매월당은 부(扶)자를 위(危)자로 고치고, 와(臥)자를 오(汚)자로 고쳐 놓고 갔다. "청춘엔 사직을 위태롭게 했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풍자인가. 매월당의 기개와 기백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매월당의 풍자와 함께 또 하나의 멋진 풍자를 생각한다면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이몽룡의 시이다.
술독에 담긴 맛있는 술은 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상에 차려진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玉盤嘉肴萬姓膏)
촛불의 눈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
가무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네(歌聲高處怨聲高)
암행어사 이몽룡이 어사출두 전에 목민관으로서의 임무를 등진 채 주색으로 소일하는 변사또의 주연에 나가 지어 내던진 이 시는 억눌렸던 백성의 마음을 일거에 속 시원하게 풀어주기에 충분한 풍자를 담고 있다.
<풍자문학>의 창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선인들의 작품과 같이 촌철살인의 우수한 풍자작품이 많이 실리길 기대한다. 또한 역량있는 풍자문학작가를 발굴도 하고, 우수한 풍자문학에 대해서는 시상도 하면서 우리나라의 풍자문학을 선도하는 권위있는 잡지가 되길 기대한다.
잡지의 탄생을 맞으며 작년 말에 고인이 된 풍자문학회 고 백성남 회장께 새삼 추모의 정을 감출 수 없다. 평소 걸걸한 웃음과 재담 넘치는 풍자로 좌중을 즐겁게 했던 백성남 회장이 <풍자문학>이 창간되었슴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 아니 이미 하늘나라에서 <풍자문학>의 창간을 알고 기뻐하리라 본다. 그러면서 여전히 걸걸한 재담으로 이런 말을 던지고 있지 않을까.
"하늘나라에선 풍자문학을 창간하려 해도 이미 폐간된 지 오래여. 인간세상도 더 이상 풍자가 필요없는 세상 만들어 봐."
불초 후배들이 열심히 노력할 터이니 지켜봐 주시고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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