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의 말
문학의 '참혹한 안락사'의 현실
미국에서 얼마 전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의사가 백 명 이상의 환자를 안락사시켰는데 실형을 받았습니다. 이 의사는 이미 몇 차례 살인죄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고발을 당했지만 무죄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형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죽을 것이 확실하고 또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 주기 위해서 이 의사는 환자를 안락사시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풍자문학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작자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그렇습니다. 문학과 안락사와 전혀 무관하겠지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입니다. 지금 국민이나 정부나 모두가 문학을 안락사 시키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지요? 현실적으로 문학이라는, 아니 문화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나라는 나라대로 자기들 좋아서 하는 사업이겠지 하고 방관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국민이 생각하는 책이란 그저 마음의 양식이니 당장은 배고픔을 느끼지 못해서 안 먹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세상은 너무도 변했습니다. 이제는 대화가 두절된 세상에 와 있습니다. 그저 모니터 앞에 눈이 벌겋게 되도록 밤을 새며 정체불명의 언어들만이 전용선을 타고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는 현실입니다.
대화라는 것이 고작 1년에 책 한 권을 읽는 국민보다 안 읽는 국민이 더 많은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컴퓨터는 중독으로 몰고가는 재미가 있는 반면에, 독서란 그저 심심풀이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라는 따분한 사고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 중에 한 몫을 담당하는 한탕주의 출판사들의 사고도 문제입니다. 작품에는 별로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그저 재미만 있으면 선정해서 대대적인 홍보로 연탄 찍듯이 찍어서 베스트 셀러만 만들어 돈이나 챙기자 라는 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학의 '참혹한 안락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선택의 폭이 좁으니 독자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책에 찌들어 당연히 독서에 흥미를 읽고는 떠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럴 바에야 홍보가 없는 독서가 참다운 독서문화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출판을 떠나 홍보가 없으면 독서시장이 그만큼 긴축이야 되겠지만 독자의 선택에 의해서 읽어진 책은 영원히 일생을 두고 남겨지지 않겠습니까?
올 가을, 이 아름다운 계절에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여행을 떠나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미국의 의사처럼 당신이 문학을 '안락사' 시켜 실형 선고를 받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운 건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찾아 주는 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여러분 「풍자문학」을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 위의 글은 <풍자문학> 2003년 가을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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