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의 말
―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올해는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이 잡초처럼 뽑혀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잔인한 테러가 연일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한 사람의 판단으로 죄 없는 목숨을 이렇게 무참하게 앗아가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쟁을 선포했던 그 사람은 지금쯤 자신의 걸음이 후세에 어떤 모양새로 남을지 두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을 벌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전쟁과 테러, 어떻습니까?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 이 올가미를 스스로 조여가며 죽어가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가 너무도 암울해서 송구스럽습니다.
『풍자문학』을 사랑해 주시는 독자, 그리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본지의 창간호가 발행된지도 어제 같았는데 벌써 통권 6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창간호 '발행인의 말'에서도 이미 말씀드렸듯이 오래 전부터 풍자문학인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여 이 변변한 문학잡지를 출범시키지 못했었습니다. 어렵게 걸음마를 시키고 돌아보니 벌써 중학생은 된 것 같아 가슴 뭉클합니다.
우리 문학인들은 금전적으로 가난하여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몇 푼씩 털어서 정주(情酒)를 나눠 마시고 했습니다. 이제 그 시절은 아닐 지라도 그 정은 그대로입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인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위정자들은 테러니스트가 활개를 치고 다니게 할지 모르지만 우리 문학인은 마음의 양식을 제공함으로서 그 테러니스트가 회유할 수 있도록 합니다.
본지가 이 만큼이라도 클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는 이리 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서산대사가 남긴 이 한시는
백범 김구선생께서 즐겨 쓰시던 휘호였다고 합니다.
이 글귀는 얼마 전 충주에 계시는 풍자문학인 중에 한 분이신
정용운 시인님께서 친필로 족자를 만들어 저에게 선사해 주시고 가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가슴속에 깊이 품으면서 본지를 발행함에 있어서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라면서
발행인의 말을 대신합니다.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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