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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의 말
“열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날이 빨리 왔슴 좋겠슴다.”
3대 독자 외아들인 아버지는 두 분 어른을 북녘에 두고 오신 실향민이시다. 40년 전 아버지는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어린 나를 데리고 임진각을 찾으셨다. 그리고 소주 한 병을 북녘 땅을 향해 따라 놓고선 눈시울을 적시곤 하셨고,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그렇게 북녘 땅을 향해 돌아서서 한참 동안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외로운 등이 전혀 낯설게만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응석을 부리지 못했다. 왠지 모를 숙연한 기운이 아버지의 모습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한참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리를 뜨실 때, 한쪽에 자리하고 서 있는 붉게 녹슨 기차를 보시면서 항상 독백처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언제쯤 저 기차가 달릴 날이 올까?”
어린 나의 눈에는 그저 거대한 한 마리의 괴물이었다.
‘저런 게 어떻게 달릴 수 있을까?’
차마 입 밖으로 말은 못하고 아버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만 내 눈에 덩그러니 들어왔다.
세월은 흘러 56년 만에 그렇게 끊겼던 철길을 이어 정말로 그 기차가 달린다고 하니 감개무량하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 기차는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뜻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니, 그간의 세월이 그저 원망스럽다.
아버지가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그 철마가 녹슨 철길 위에서 50년 넘게 생기를 잃은 채 앙상한 뼈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그 철마에게 생명을 불어넣게 되었다.
온 국민의 염원인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그동안 소리 없는 기적으로 붉게 산화된 철마는 이제 힘찬 기적소리를 내며 마음껏 달릴 날이 온 것이다.
매년 한반도 38선에 봄이 오면 얼었던 눈도 녹고 여름에는 신록이 찾아오건만 어찌 인간이 그어놓은 분단의 벽은 헐지 못한단 말인가. 그것도 50년이 넘도록 말이다.
반도의 사전적 의미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이어진 땅으로 대륙에서 바다 쪽으로 좁다랗게 돌출한 육지를 말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서 여태껏 외국으로 나갈 경우 육지를 통하는 길은 없었다. 배를 타고 나가든가 아니면 하늘을 이용해야만 가능했다. 반도가 아닌, 섬 아닌 섬이었다. 분단된 내 조국의 비극 아닌 비극이었다.
백범 선생이 말씀하신 의미가 50년이 넘어서야 되새겨진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녘 땅을 다녀온 후로 이렇게 남북한의 화해무드가 진전되어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분단의 비극이 이제는 진정 종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날 임진각에 서서 북녘 땅을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마음속으로 바라고 희망하시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저 하늘나라에서도 지켜보며 기뻐하실 것이다. 멈췄던 철마가 하나로 이어져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유럽까지 진출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학수고대해 본다.
하늘이 맑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임시열차를 타고 온 북한 여승무원의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날이다.
“열차 타고 유럽까지 가는 날이 빨리 왔슴 좋겠슴다.”
풍자문학 발행인
김태봉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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