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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문학> 발행인의 말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모두 자기가 잘났다?"
독재자 한 사람이 깽판을 칠 때는 차라리 뱃속이라도 편했다. 그 한 명만 때려잡으면 그만이었다. 국민들의 목소리와 정치인의 목소리도 그때 그 시절에는 한 목소리로 사이좋게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암흑장벽을 지키고 있던 탱크를 밀어버리고 서로가 의지하며 총화 단결했다. 목적이 분명했기에 취해야 할 행동 역시 투명했고, 전 국민이 증오로 분노하며 하나로 똘똘 뭉쳐 마침내 민주주의를 이뤘다.
한 사람이 국민의 적이던 시절에는 그만큼 국민의 단결도 잘되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정작 웃기는 것은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된다는 데 있다. 만인이 모두 잘났다고 하니 도대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드니 그저 난감할 뿐이다.
국민을 난타하던 대장 호랑이가 없어지니 수많은 여우와 늑대들이 서로 대장이라고 들끓고 있다. 포악한 독재자 연산군 하나가 쓰러지니 여기저기에서 모사꾼 한명회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꼴이다.
국민이 한마음 되어 저 높은 곳을 향했던 진취적인 기상은 사라지고 옆에 있는 동료를 못 잡아먹어 안달복달이다. 경제는 정치를 버리고, 정치는 언론을 버리고, 정치는 민심을 외면하고 자신들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마치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형국이어서 어느 정치인 하나 꼬리가 멀쩡한 이가 없다.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이제는 난세를 이끌 스승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인이 만인의 적이니 자기가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노하고 힐책한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서 자신이 속한 집단은 잘못이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이들이 나라의 막중대사를 칼질하니 본래의 뜻도 여러 갈래로 나눠진 꼴이다. 이쯤 되면 누가 백로인지 까마귀인지 뒤섞여 서로가 잘났다고 손가락질을 하니 이제는 회색일색이라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한 당은 두 당이 된 지 오래고 야당은 야당대로 야당인지 여당인지도 국민들은 그저 헷갈릴 뿐이다. 백정이 칼을 잡으면 양식이 되지만 위정자가 칼을 잘못 잡으면 국민이 혈세를 흘린다.
구소련 공산당 의회에서 당시 총서기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과오를 폭로하며 비판하는 성명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당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최측근으로서 스탈린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스탈린의 과오를 그토록 잘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의 생전에는 잠자코 있다가 이제야 폭로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른 뒤에 흐루시초프가 의회에서 또 한 차례 스탈린을 비판할 때 청중석으로부터 종이쪽지 한 장이 그에게 전해졌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 당시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는 흐루시초프의 정곡을 찌르며 그의 사심과 무지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질문이었고 이에 대한 대답을 회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회피하면 자신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흐루시초프는 연단에서 쪽지에 쓴 글을 크게 낭독했다. 그리고 청중석을 직시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이 쪽지는 누가 쓴 것입니까? 한 번 일어나 보십시오! 그리고 이 연단으로 올라오십시오!”
청중석은 삽시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바늘 하나가 떨어져도 들릴만한 분위기였다. 청중들은 막강한 권력자가 지금 무슨 행동을 벌일지 알 수 없어 두려움에 떨었다. 그 쪽지를 쓴 사람도 더욱 불안해하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곧 후회했다. 이제 흐루시초프는 쪽지 쓴 사람을 조사하기 시작할 것이고, 틀림없이 자기를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흐루시초프는 또 한 번 외쳤다.
“이 쪽지를 쓴 사람은 일어나 보십시오!”
그러나 여전히 조용했다. 몇 분이 지난 다음 그제야 흐루시초프는 부드러운 말투로 쪽지에 쓴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당시 나는 바로 당신이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칼자루를 쥐면 휘둘러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이 말이 국민을 이끄는 정치인들에게 적용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것은 지론이다. 국민이 상류층 인사들의 탐욕스러움을 비판하고 책망하는 거야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중국대륙의 황하가 흙탕물인 것은 대륙 전체가 부정부패로 물들어서가 아니라 본래 대륙 전체가 황토라서 그 지경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이대로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모두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다가는 한강의 물도 황하의 물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맑은 물일 수 없다는 말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붉은 흙탕물이 흐르는 한강을….
“쉿, 여보게,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요즘은 한강의 물이 점점 맑아져서 물고기의 개체수가 늘고 있다네.”
“뭐라고? 어허, 이거야 원. 한강을 가본 지가 언제였더라?!”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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