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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문학> 발행인의 말
"한여름 뙤약볕에도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 이치는 언제나 똑같다. 인간이 사는 이 지구는 둥글게 생겼고, 누군가 돌고 도는 게 세상사라 했다. 이 땅에 주기적으로 1년 전에도 천둥번개는 쳤고, 5년, 10년 전에도 쳤다. 그리고 겨울이 가면 반드시 새봄은 왔다.
역사적으로 당파 싸움으로 인해 어느 한쪽이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았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에는 패자가 되기도 하듯이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이 개인의 영달이 되었든 임금의 자리가 되었든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항상 봄은 오지 않던가. 여당이고 야당이고 당쟁 싸움 역시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것이 순리이다. 문제라면 그 시기가 언제이며 그것이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것이냐이다.
한 노숙자가 썩은 발에서 흐르는 고름을 벼룩시장 신문지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의 발가락은 이미 괴사되어 있었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발을 잘라내야 하리라. 어쩌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울지 모른다.
이 광경은 며칠 전 필자가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종로 3가를 지나 종묘 입구를 지나다 목격한 일이다. 그때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노숙자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머리털이 쭈뼛하고 온몸에 왕소름이 돋았다. 그것도 서울 도심지 한복판에서 말이다.
예전에는 민속주점이나 노점상 등이 밀집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를 말끔히 단장하면서 행인들이 오가며 서울의 문화와 볼거리를 접할 수 있다. 이곳은 지금도 한창 거리의 박물관이라 칭하며 거리를 조성하고 있는데 이때 발굴된 각종 유물들이 사진과 함께 길 따라 담 따라 전시되고 있다. 그 노숙자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무심히 자신의 다리에서 흐르는 고름을 닦아내고 있었다.
종로 대로변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고, 그 한편에서는 게시물과 전시 유물들을 관람하는 내외국인의 일행이 유유자적 담소를 나누며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 댔다. 그러다 노랑머리의 서양여자가 그 노숙자에게 초점을 맞추는가 싶더니 셔터를 누른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급히 일행과 합류하였다.
가을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거리의 박물관을 알리는 깃발만이 만국기가 되어 형형색색 가을바람에 춤을 추었다.
오늘도 온통 난리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표로 연일 매스컴에서는 며칠 남지 않는 서울시장 선거로 나라가 들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장 자리는 단순히 시장 자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수도인 서울특별시의 자치단체장이다. 그 인구는 1,100만 명(경기도 인구는 1,157만 명)에 달한다. 이는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인 850만 명의 뉴욕시(교외를 합치면 1,600만 명) 인구보다도 많다.
그만큼 서울시장 자리는 여야 모두에게 중요한 정권장이다. 역대 서울시장을 지낸 후 대통령에 당선된 인사는 윤보선과 이명박을 꼽을 수 있고, 허정과 고건은 서울시장을 지낸 후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하기도 했다. 광역시장들의 인사가 차관급인 반면에 특별시장은 장관급에 속한다. 대한민국 4,800만 명 중에 서울에만 1,100만 명이 살고 있으니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면 이는 결코 작은 자리가 아니다.
서울시장직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속한다. 한성부 판윤은 조선시대 한성부를 다스리던 정2품의 관직으로 자헌대부 이상의 품계에 해당되었다. 그들의 직무는 행정과 사법 업무를 겸하였다. 육조의 판서, 좌참찬, 우참찬과 함께 9경으로도 부르며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종 때 한성부 판윤으로 박영효가, 대한제국 이후에는 민영익을 들 수 있다.
지인의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행사장을 나오자 어느덧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면서 네온등이 반짝거렸고, 사람들은 유흥에 흥청거렸다. 가을의 맑은 날씨 덕분인지 한강시민공원에서 펼쳐지는 세계불꽃놀이축제에서 뿜어내는 불꽃이 유난히 아름답게 밤하늘을 수놓았다.
거리의 TV 뉴스 화면에는 야권 단일화로 박원순 변호사가, 여권은 나경원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좁혀졌다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고, 이어서 서울역 노숙자들을 강제로 역사 내에서 내쫓는 장면과 서울역 직원들에게 항의하는 노숙자들의 장면이 지나갔다.
문득 초저녁에 보았던 노숙자가 떠올랐다. 이 노숙자들에게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서울시장일까?
그 옛날 황제皇帝 또는 왕王은 하늘이 내려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이 뽑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국민은 하늘(天)이 아니겠는가. 이 노숙자 역시 하늘이리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하늘이 되는 것임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팔삭둥이 한명회가 칼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성공한 후에 한강변에 압구정을 지어놓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득의만면할 때, 생육신에 버금가는 충의지사들은 하류 쪽 밤섬에 누옥을 지어놓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만큼 이익의 시대가 따로 없고 손해 보는 시대가 따로 없다. 망하고 흥하는 것은 동시대적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말이다.
서울시장 또한 그렇다. 누가 당선되든지 여야당 따질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사람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 오늘도 배고픔에 굶주리는 국민이 있다. 물론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예전 시장이 했던 일을 철거하여 원상복귀하겠다는 공약 등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철거비용으로 노숙자의 고름을 닦아주는 일이 진정으로 서울시장이 할 일이라 본다.
서울을 디자인하는 것도 좋고 한강의 수중보를 철거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노랑머리 서양여자의 카메라 셔터를 막을 수 있는 시장이 진정으로 국민이 바라는 인물이리라. 국민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순리대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살기 좋은 나라로 이끌어 주길 바랄 뿐이다.
물론 아무리 햇볕이 좋아도 양지만 있는 게 아니라 그늘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늘진 곳을 들여다봐 주는 이가 서울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게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이다.
고민일세, 누구를 찍어야 하나?
어? 이런, 오늘도 내 집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네….
풍자문학 발행인
김태봉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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