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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문학> 발행인의 말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
세상의 아무리 굳건한 철문이라도 돈을 가지고 노크를 하면 저절로 열린다. 또한 돈이 말을 하면 진실이 묻혀 버리기도 하고, 돈으로 치장하면 하찮은 사람이 근사한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것이 돈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이번에도 돈 봉투 사건으로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돈을 주고받는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는 말에 국민들은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지금껏 그런 부정부패에 휩싸인 무리들과 손을 맞잡은 위정자들을 믿고 나라의 살림을 맡겼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세상이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졌다. 위정자는 위정자대로 기업 총수들은 총수대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말이지요”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세상이 혼탁해야 청렴한 사람이 돋보인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한다.
기업 총수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지금의 그룹이 일어난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백 명의 성실한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일엽지추一葉知秋라고 했던가.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알 수 있고, 한 가지 일을 보고 장차 오게 될 일을 예측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냉혹한 심판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칼날이 번뜩인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재벌개혁’을 외치며 칼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기업 그룹과 그 가족들의 추문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덩달아 정치권은 몇 개월 남지 않은 선거의 인기몰이를 위해서인지 재벌개혁의 처벌 강도 수위를 높이는 장치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에 사법부도 뒤질세라 대기업 총수들의 몸통을 양파껍질 까듯 한 겹 한 겹 벗기고 있다. 아무튼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일이지만 재벌 봐주기 식의 관행으로 일관한다면 더 이상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가족의 생계 때문에 부정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정화조 차 옆에서 방귀 뀌는 놈을 나무라는 꼴이다. 물론 파리똥도 똥은 똥이고, 큰 죄나 작은 죄나 죄는 분명히 죄다. 그러나 탐욕 때문에 법을 어기고 축재를 위해서 부정을 저지른 놈은 혹독하게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재판은 그와 정반대되는 짓거리를 예사로 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 범한 죄와 축재를 위해서 범한 죄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고래는 놔두고 새우만 족치는 격으로 거금 먹은 놈한테는 속수무책이고 푼돈 먹은 놈만 두들긴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일이다. 이게 진정 법치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판인가.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대사가 실감이 난다. 나라가 흔들릴 정도의 큰 죄를 진 놈은 솜방망이로 얻어맞고 정작 생존을 위한 좀도둑은 철퇴를 맞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기업 총수들의 비리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의 사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국민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하리라.
미국의 남북전쟁 시절로 돌아가 보자. 이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이 있었지만 노예제를 추방하고 북부와 남부의 분열을 종식시키며 미합중국을 보존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1900년대 당시 공업 총생산액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합친 액수를 넘어섰다. 그리고 19세기의 영국을 대신해서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그 후 150년이 지난 21세기에는 중국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당시 놀라운 경제성장은 공룡처럼 거대한 대기업들을 낳았다.
록펠러, 카네기, 모건, 철도업의 밴더빌트 등은 맨땅에 헤딩하며 재벌의 대열에 올랐다. 그들의 힘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좌지우지했으나 거기에도 정경유착이라는 검은 손이 있었다. 당시 소득세도 없고 독점제한법도 없었으며 노동법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으니 부자들을 위한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한 사람의 재벌이 태어나기 위해서 500명이라는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재벌은 대부분 안하무인이어서 대중에게 ‘강도귀족’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도 큰 문제였다.
그 시대 금융업의 대재벌인 모건은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 소식에, “태어나서 이렇게 슬픈 소식은 처음이야!”하며 한탄했다고 한다. 그만큼 매킨리는 재벌들을 위한 정치를 펼쳤고, 그 대가로 검은 돈을 받고 정경유착을 조장했었다.
그러나 이때 루스벨트가 새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뉴욕 주지사 때부터 독점기업들에게 세금을 신설하는 등 ‘반재벌’ 정책을 펼쳐 나갔다. 취임 직후에도 “우리는 재산권은 존중하지만 부패는 존중하지 않는다”며 강도귀족들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가 더욱 강력한 재벌 규제 정책을 밀어붙이자 강철왕 헨리 프릭은 격분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에게 먹이를 주었는데, 주인의 손을 물다니!”
루스벨트 역시 그들에게 초기에는 정치자금을 받았으나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그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세상에는 검은 것이 되었든 하얀 것이 되었든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배를 탄 것이지 않은가. 재벌만 배부르고 서민은 배고프면 당장은 그 배가 잘 나아갈 것 같지만 결국은 좌초되고 만다. 서민이 없는 재벌은 뿌리 없는 나무나 다름이 없다. 아무리 잎이 무성해도 결국에는 시들고 말 것이다.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개 삼고 살더라도 그 가운데 한 가닥 마음의 즐거움이 있다면 뭐가 부러울 것이 있을까. 불의로 얻은 부는 뜬구름과 같지 않은가.
오늘도 부정으로 조사를 받기로 한 퇴직 공직자가 창문으로 뛰어내렸다는 아침 뉴스가 마음을 어지럽히는구나….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런… 배의 방향키를 뽑아서 노를 젓고 있네?’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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