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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세상을 치료하는 진정한 명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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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세상을 치료하는 진정한 명의 없소”

― 김태봉┃계간지 <풍자문학> 발행인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건만 아직도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우리 국민의 앞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국민을 잘 살게 해달라고 뽑아줬더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단 말인가.
대통령을 수행하는 자가 타국에서 나라 망신을 시키는가 하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날려버릴 원전비리 같은 대형 사건들이 잊을 만하면 벌어지고 있다. 원전비리 사건은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을 남한에 떨어뜨리기도 전에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고위공직자나 위정자들이 이제는 그만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그래도 위로를 받는 것은 한 사람의 청렴한 공직자를 보고 사는 세상이 있기에 세상은 삐꺽거리면서도 돌아가는 것이다.

중국의 혁명가 손문이 현직 의사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5.4학생운동이 한참 격렬할 때 손문은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시위 중에 손을 다쳐서 병원을 방문했다. 손문은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해서 보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그 학생이 다른 곳을 다쳐서 또다시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치료를 해서 보냈으나 문제의 학생이 또 다른 부위를 다쳐서 동료들에게 업힌 채 들어왔다.
‘아, 현재 나의 의사란 직업이 뭐란 말인가? 내가 진정으로 환자를 고치려면 학생들에게 부상을 입히는 이 세상부터 먼저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손문은 즉시 병원 문을 닫고 중국혁명의 길로 입문하였다.

중국대륙의 공산당이나 대만의 국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부國父로 받들어지는 사람이 손문孫文이다.
손문, 그는 중국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로 홍콩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반청 혁명을 목표로 1894년 흥중회興中會를, 1905년 중국혁명동맹회中國革命同盟會를 설립했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에서 임시대통령에 추대되어 다음해 중화민국의 성립과 동시에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원세개袁世凱에게 양보하고 사임했다. 그 후에 여러 번의 망명생활을 하다 일본에서 지내기도 했다. 1917년에는 광동군 정부를 만들어 대원수에 취임해 1918년 상해에서 중국 국민당을 만들어 1924년 북벌군을 일으켰으나 다음 해 북경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런가 하면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이 지방 관리로 부임하는 첫날을 이렇게 지적했다. 당시 지방에 부임하는 목민관은 길어야 2년, 짧으면 몇 달 동안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 지방의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들은 계속 한곳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정약용은 이들의 세력을 보면서 오히려 이들이 지방정치 무대에선 주인이고, 목민관은 나그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민관이 지방관아에 부임하는 날 옷을 화려하게 입고 나타나면 아전들은 그를 쉽게 보았다. 그러나 검소한 차림으로 등장하면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목민관은 아전들이 뇌물로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지만 소박한 복장의 목민관은 대부분 자기 뜻대로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청렴한 관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여 명령에 잘 따르지만, 비리로 얼룩진 목민관은 그 질서가 엉망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목민관의 명령과 법에 따라 일을 하면서도 어리숙한 목민관을 속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목민관과 내통하여 지역의 당당한 세력가로 군림했다. 그래서 지방 6전을 담당하는 관리들을 ‘6명의 도적들[六賊]’이라고 불렀다.
“백성들은 밭을 일궈 농작물을 수확하지만, 이들은 백성을 수확해야 할 밭으로 여겼다. 이들은 백성의 머릿수를 세면서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고 비판했다. 목민관이 공무를 집행할 때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고 뇌물을 받으면 당장은 속일 수는 있을지라도 결코 그 도둑들의 비열한 눈을 피하지 못한다.

현재는 역사의 반복이고, 원칙은 불변의 속성을 지녀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갈대와 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백성을 사랑한 인물들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 왔다.
고향집에 머물던 맹사성은 가까운 저수지에 낚시를 갔다가 그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을 만났다. 맹사성은 자신을 ‘중리에 사는 맹 첨지’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낚시를 즐기다 맹사성이 가져온 보리개떡을 나누어 먹었다. 날이 저물어 헤어지면서 맹사성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장, 며칠 후 저의 생일인데 별로 차린 것은 없겠지만 놀러 오시지 않겠습니까?”
노인은 맹사성의 청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가난한 농부였던 노인은 맹 첨지의 생일이 다가오자 생일선물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맹 첨지가 좋아하는 보리개떡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그 마을에 도착해서 마을사람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이 근처에 맹 첨지 댁이 어디입니까?”
그런데 이게 어찌된 노릇인지 맹 첨지의 집은 가난한 초가가 아니라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게다가 집 앞에는 여러 채의 수레와 가마, 여러 마리의 말이 늘어서 있었다.
맹사성은 노인을 보자 반갑게 맞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하러 온 고관들에게 낚시친구라며 노인을 소개했다. 그때야 낚시터에서 만난 맹 첨지가 바로 맹 정승이라는 사실을 알고 노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전날의 무례를 사죄했다. 그러자 맹사성이 말했다.
“노인장,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법입니다. 내 비록 벼슬이 정승이라고는 하나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사죄니 뭐니 하는 말은 말고 앞으로도 자주 함께 낚시를 즐깁시다.”

고불古佛 맹사성(1360∼1438)은 황희 정승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치세를 도와 조선왕조 초기에 문민정치의 기틀을 다진 명재상이요 청백리다. 이러한 정치인은 우리에게 항상 가까이 있었다.
비리를 저지른 인사들의 처벌은 장제스蔣介石가 애첩에게 가한 처벌 정도는 되어야 하리라 본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게릴라전술’에 패해 타이베이로 피난한 장제스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먼저 생각한 것이 측근들의 비리를 우선으로 척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그의 애첩인 둘째부인이 뇌물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안고 장제스는 자기의 애첩을 밧줄에 매달아 비행기로 태평양에 수장시켜 버렸다. 이것을 본 타이완 국민들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보다 더 좋은 교훈은 없었으리라.

“작은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보통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고, 큰 의사는 나라를 치료한다”고 했다. 물론 병원에 환자를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초기에 치료하는 것과 그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 시대를 치료할 만한 진정한 화타는 어디 없소?”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그렇다. 현명한 왕은 결코 변명하지 않는다.”
“한국의 부모, 당신이 바로 천사이십니다.”
2013/07/02 16:39:55 from 222.235.5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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