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발행인, 조회: 751, 줄수: 44
언론에 춤추는 국민, 언론의 자유는 망국의 지름길?!

poongja52_1353.jpg
Downloaded 253 times : poongja52_1353.jpg (29875 bytes)


"언론에 춤추는 국민, 언론의 자유는 망국의 지름길인가?!"


제목만으로는 발행인이 몰매를 맞을 만하다. 수많은 희생의 대가로 민주화를 이룩하여 지금에 왔다. 진정 어떻게 찾은 암흑시기의 독재에서 꽃피운 자유란 말인가. 그러나 적당한 단속은 이 사회에 풍요함과 조용함을 불러온다. 완전한 자유는 방종이고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설치는 세상이 되고 만다. 그걸 부추기는 범인이 바로 언론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경제는 경기가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오늘 아침 뉴스에 유럽의 선진국인 그리스도 국가부도 사태까지 갔다는 보도를 들었다.
참으로 세상이 흉흉하다. 전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여파로 경기가 꽁꽁 얼어붙어 상인들은 하루하루가 울상이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여는 동시에 한숨부터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니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란다. 적자 인생이지만 당장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경기가 조금 살아날 만하면 계속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이다. 요즘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으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작년에는 세월호 여파로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이제 조금 잠잠해질 만하니 이번에는 세월호보다 더 큰 괴물이 설친다. 하지만 매년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인구는 메르스로 인해 사망한 인구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연일 매스컴은 메르스가 온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갈 듯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 댔다. 조용히 지나갈 사건도 팽팽하게 부풀려서 약하게나마 불씨가 보일 경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작 무서운 것은 메르스 전염병이 아니라 언론이다.

언론의 힘은 위정자나 핵무기보다 그 영향력이 몇 배나 크다. 언제부터 이렇게 국민이 언론에 좌지우지하며 춤을 추게 되었단 말인가. 그래서 군사혁명을 일으키면 언론부터 장악하고 총칼은 그 다음이라고 했던가. 인간의 입이 하나고 귀가 둘이라는 걸 실감한다. 남의 말은 정말 잘도 듣는다. 귀가 둘이라서….

매스컴에서 연일 메르스 전염병이 창궐한다고 하니까 동네 마트나 약국의 마스크가 동이 나는 이변이 벌어졌다. 며칠이 지나 매스컴에서 나흘 동안 메르스 전염병 확진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니 출근길에 어제와 다르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매스컴의 말은 현대인의 스승이다. 부모의 말은 안 들어도 매스컴의 말을 정말 잘 듣고 움직인다.

매스컴은 폭행하고 나서 매스컴이 무책임하게 폭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스스로 탄식한다. 참으로 양식 있고 쓸 만한 언론이다(?).
방안에 있던 사악한 늑대를 내쫓으니까 뒷간에 있던 여우가 슬쩍 들어온단 말인가? 무력으로 총칼을 앞세운 군부폭력을 몰아내니까 양가죽을 쓴 언론 여우가 나불거리는 입방정에 온 국민이 놀아난다.

군부의 위정자들이 우격다짐으로 국민을 위협했다면 언론은 양가죽을 쓰고 애무하면서 목을 조르는 격이다. 그만큼 언론의 횡포는 겉으로는 달콤하고 신사적이다. 그러다 쥐고 흔들면서 갖고 논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부실하던 회사가 어느 날 매스컴을 한 번 타더니 상품이 불티나듯 팔려 떼돈을 벌게 되었는데, 단 하루 만에 또다시 언론에 맞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독재에 맞서 싸우면 민주투사로 언론이 추켜세우지만 언론에 맞서면 어디에도 구제받을 길이 없다. 상인들을 협박하고 갈취하는 깡패에 맞서 싸우면 경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경찰과 맞서 싸우면 깡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치라고나 할까? 그만큼 언론은 장기집권자이며 그 누구도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다.

흔히 듣기 좋은 말로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공한다지만 그 제공으로 인해서 국민은 타락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건만 굳이 국민의 귀에 못이 박히게 떠들어 댔다. 그럼 자연스럽게 국민은 몰랐던 유혹의 세계, 그쪽을 힐끔거리며 남의 눈을 피해서 찾게 된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사전에서 밝히는 언론에 대해 범위가 상당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삶을 함께한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서로의 뜻과 생각을 주고받는 전달과 교환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건이 필요하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 또는 기타의 기호를 이용해서 표현하거나 공표하는 것을 대중전달(커뮤니케이션), 즉 넓은 의미로는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현상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대인관계의 언론현상이다. 즉 대인 대중전달이다. 이는 그 주체자들이 서로 같은 장소에 근접해 있는 물리적 인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로가 상대방을 의식하며 지향적으로 상호작용과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면상황에서 서로의 의사가 전달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둘째는 대중매체에 의한 언론현상을 말한다. 즉 대중매체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군중과 하나의 발신인 사이에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형태이다. 그 의사는 미리 의도적으로 준비되며 매체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 대체로 비형식적으로 행해지는 대인간의 언론현상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대인간에 이루어지든 대중전달에 의해 이루어지든, 전반적인 언론현상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목적 또는 기능을 네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 주위환경에 대한 지식을 공유화시키는 기능이다. 둘째, 새로운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주어진 구실을 하고 규범과 관습을 배우도록 그들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셋째, 사회 구성원들에게 즐거움을 주어 불만을 해소시키고 예술적 형식을 창조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에 대한 합의를 성취시키고 동료 및 추종자를 설득해 의도한 방향으로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게 하는 기능 등을 수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언론이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이룩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좋게 말하면 사회과정의 현실적인 이음줄 역할을 하는 게 언론이라 하겠다. 이 얼마나 달콤하고 이로운 언론인가?

그런데 정작 언론을 자처하는 모든 미디어들은 세상에 뉴스를 만들기 위한 인간이 저지른 악행은 매체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데 선행은 너무도 냉담한 반응으로 내면에서 보인다. 이게 오늘의 언론이라 하겠다. 이 슬픈 세상에 현대인들은 또다시 언론에 의해 춤을 추고 다닌다. 발행인도 오늘 언론지를 자처하며 그들과 연애하고 있다. 뭐 묻은 게 남 탓을 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치정사건에 호기심을 안 보이는 요조숙녀가 없고 불구경에 정신을 안 빼앗긴 신사가 없다지만, 언론의 폭풍보도야말로 이 사회의 악법을 여과 없이 퍼트리는 왕 중에 왕, 메르스라 할 만하다.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언론의 자유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발행인은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그것을 남용하려는 사람뿐이다”라고 헛기침한 괴테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역시 괴테가 마음에 꼭 드는구먼. 속이 다 시원하다!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반드시 역사는 반복된다. 더 이상 놀랄 일?!”
“그럽시다. 우리 같이 갑시다!”
2015/08/26 07:59:25 from 58.122.96.45
Modify Delete Reply Write List
풍자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