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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창고가 가득 차야만 예절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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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이 지은 <관자(管子)>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백성은 창고가 가득 차야만 예절을 알며, 의식이 풍족해야만 영화와 치욕을 안다. 위에 있는 자가 법을 지키면 육친이 굳게 결합되며, 예의와 염치가 없어지면 나라는 망하는 법이다.”

작금의 세태가 이렇다. 서민의 창고는 고갈되어 빚이 산더미처럼 불었다. 전세금은 집값 대비 차이가 별로 없으니 나라의 정책에 춤추며 은행 돈 무서운지 모르고 무리해서 집을 샀고, 하룻밤 자고 나면 빚은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한 모금만 더 불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나라의 거품이 꺼져가면서 서민경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도가 나지만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당리당약에만 매달리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거기다 이 땅에 어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점점 살기는 각박해지니 예절과 염치는 땅에 곤두박질쳤다.

고액벌이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은 불투명하고, 도움을 받아도 시원찮을 월급쟁이들의 지갑은 투명유리가 되었다. 이들은 하루하루 돌아오는 카드 빚 갚기에 급급해 등이 휘고 똥줄이 탄다. 창고가 비었으니 예절이고 뭐고 차릴 게 없다.

창고가 비어서 그런 것일까. 거리에서는 언제부턴가 앳된 여자와 중고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당당히 물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흡연자 역시 피우던 담배꽁초를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에 버린다.

한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쓰레기를 무단투기 하는 행위는 당신의 양심을 버리는 행동”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 사람 나와서 선도하는 이도 볼 수 없다. 공연히 참견했다가는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갈 때까지 간 것이다. 예의가 바닥을 드러낸 지는 오래되었다.

윗자리에 앉은 자, 특히 기관의 장 자리에 앉으면 뒷돈 챙기기에 급급하니 윗물 역시 썩어도 한참 썩었다. 위에서 법을 지키지 않으니 국민들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위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아래 것들이다. 예절이 없다고 서로 간에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다. 예의와 염치가 없어진 때문이다.

살다 보면 예절의 끈이 놓아질 때가 있다. 정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자는 불의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법이다. 현명한 사람은 지식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이때는 상식이 통한다. 경제를 살리는 정치 역시 법으로만 잣대를 재다 보면 형식에 얽매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혹해지는 게 상식이다.

하루는 공자께서 길을 가는데 아녀자가 무덤에 엎드려 너무도 슬프게 울어 그 연유를 물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슬프게 우십니까?”

그러자 아녀자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작년에는 아들이 호랑이에게 잡혀 죽었는데 어제는 제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제 저는 어찌 살아야 할지 앞날이 막막합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의아해 하며 아녀자에게 되물었다.

“아니, 어째서 당신네들은 안전한 마을에서 살지 왜 이렇게 위험한 인적이 드문 산골에 사는 것이요?”

그러자 아녀자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래도 이곳에는 무서운 호랑이는 있지만 가혹한 정치는 없지 않습니까.”

현대의 가혹한 정치는 세금과 경제 살리기에 직결된다. 정치를 잘하는 꾼은 국민의 복리를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특별한 법을 따르지 않고 평범한 양식을 따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누구나 평등하기를 원한다. 가진 자에게 배가 터지도록 먹일 것이 아니라 없는 자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어리석게도 사람은 만 리를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을 발명했지만 정작자신이 가는 앞의 십리 길도 내다보지 못하는 바보이다. 그래서 길잡이 노릇을 하라고 정치인을 내세웠는데 오히려 이들이 호랑이로 변하지 않았는가.

판사나 검사, 목사 등 ‘사’자 붙은 자들이 끊임없이 나와야 한다. 그러다 이들이 없어도 세상이 그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 날 때에는 멍석말이를 해서 이 지구에서 모조리 추방해 버려야 한다.

“화서씨의 나라”가 있다. 물론 꿈속에서 존재하는 나라이지만 국민은 이런 나라를 간절히 원하리라.

이 나라에는 국민을 다스리는 대통령이나 통치자가 없다. 다만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모여 오순도순 안락하게 살고 있다. 이 나라 국민은 맛있는 음식이나 집, 멋진 옷 등에 대한 욕심도 없다. 하물며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며 지배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이들 국민은 삶을 즐기는 일도 죽음을 싫어하는 일도 없다. 자연에 적응하며 순리대로 살아가니 일찍 죽은 사람도 없다. 어쩌다 제 명껏 살지 못하고 죽은 경우란 인간의 욕심이 화근이 되어 몸을 망쳐서 일어난다. 삶과 죽음을 자연에 맡기면 일찍 죽는 일은 없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남과 함께 서로 화목하게 자연 그대로 살아갈 뿐이다. 미워하는 이도 없다. 서로 이해타산이 없기에 배신하지도 않는다. 또한 결코 강요하는 법도 없다.

세상에 선과 악, 아름다움과 못생김이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는다. 산길을 걸어도, 골짜기를 걸어도 힘들지 않고 넘어지지도 않는다. 생각하는 대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나라는 일상의 생활과는 동떨어졌다.

우리의 대통령은 꿈에 이 나라를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 나라의 모든 규범을 가져오고 싶었다. 대통령은 꿈에서 깨어 각개 부처의 장관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참 도리라고 하는 것을 알았어요. 참 도리는 억지로 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의 욕심도 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면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야 국민을 위하는 참 도리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마음의 이익일 뿐 타인에게 말로써 설득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생각하고 해온 정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화서의 나라를 다녀온 대통령은 이후부터 서민을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우선순위에 두며 국민의 말을 듣기 위해 두 귀를 세웠다. 그러니 자연 국민은 대통령을 따랐고 온 나라는 흥타령에 도끼자루 썩는지를 모른다.

‘화서의 나라’, 즉 ‘화서지국(華胥之國)’이라는 말은 ‘이상적인 태평한 나라’를 의미한다. 풍자적으로 은유해 보았지만 정작 원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많이 배운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은 배가 뒤집혔을 때 무엇부터 구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잔소리로 늘어나도 틀리지 않은 말이 있다.

“국민은 창고가 가득 차야만 예절을 안다(?)”


『풍자문학』발행인
김태봉 배상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반드시 역사는 반복된다. 더 이상 놀랄 일?!”
2015/12/14 10:04:09 from 1.231.2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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