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발행인, 조회: 477, 줄수: 35
“사람 생명보다 뭣이 중헌디!”

poongja-56.jpg
Downloaded 165 times : poongja-56.jpg (79101 bytes)


러시아 속담에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건널목을 건널 때도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친구들과 마주 앉아서도 스마트폰을 본다. 제 목숨을 위협하는 차들은 주의 깊게 살피지도 않는다. 오로지 스마트 폰에 담긴 세상에 푹 빠져 있다. 지하철 안에서나 밖에서도 말이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이 목숨을 잃어도 모른다. 모두가 안전불감증이라는 중병에 걸려 있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다.

얼마나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와야 한단 말인가. 성수역 사고에 이어 몇 달 전 서울 도심 철도 강남역 지하철역에서 사고가 났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고장 수리를 하던 작업자는 작업에 열중하여 들어오는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당시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그래서 이 사고로 서울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고장 시 2인 1조로 수리작업에 출동하여야 하며 지하철 운행 시간에는 안전한 승강장에서만 작업해야 하고, 스크린도어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 스크린도어 안에 들어갈 경우에는 사전에 보고할 것 등, 비로소 안전관리 지침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고가 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다시 사고를 반복한단 말인가. 이번에도 강 건너 구의역에서 한 청년 작업자가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들어오는 전동차에 목숨을 잃었다. 성수역에 이어 강남역의 사고와 너무도 닮은 판박이다. 아니 똑같다. 작업자는 우리 나이로 20세의 꽃다운 청년이었다. 이제 막 사회에 한 발을 내디딘 초년생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청년 수리공의 가방 속에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자 더 울컥했다. 그리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처절한 절규가 허공에 메아리쳐 오늘의 현실을 더욱 암울하게 한다.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것을 후회합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공업고등학교로 들어가서 취업을 하고 백만 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로 쪼개서 적금까지 부었어요. 안전장치도 하나 없는 환경에서 끼니를 걸러 가며 일하고 혼자 견디고 집에 와서는 씻지도 못할 만큼 지쳐 쓰러져 잤어요”라며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자신이 처한 입장이 아니라면 이 어머니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의 절규는 세상 모든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너무도 열악한 작업 환경이 한 청년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강남역 사고 때 만든 지침서만 지켰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죽음이라는 그림자는 단 한 번의 실수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후진국도 아닌데 어떻게 같은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사고 역시 예견된 일이었다. 구의역사의 근무자와 스크린도어 수리기술자 간에 소통만 제대로 이루어졌어도 이 끔찍한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지침서대로라면 2인 1조가 작업을 해야 하는데 고장신고를 받고, 그것도 사회 초년생이 혼자 출동하여 서울 시민의 발인 그 큰 작업을 어떻게 온전히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첫 번째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항상 사고의 근원지는 있기 마련이다. 서울메트로에서 수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원청에서 막무가내 식으로 삭감하는 단가는 외주하청업체의 수익의 근간을 흔든 것이라 본다. 그러다 보니 수익은 바닥이 뻔할 것이다. 이 비용으로 2인 1조의 작업 환경이 되는지도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수익이 나야 두 사람이 1조가 되어 작업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어떤 업종에서든 이러한 원청과 하청 간의 골치 아픈 일은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같은 값이면 싼 것을 원하리라. 그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이것은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일이다. 단순히 화장실 문을 수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움직이는 문을 수리하고 거기다 열차까지 들어오는 장소이다. 수많은 승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절대 안전이 필요한 곳이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고 있는 중이라면 이 역을 통과하는 열차는 당연히 속도를 줄여야 한다. 기관사에게 스크린도어 수리중이라는 통보를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번 사건은 한 청년의 죽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날림식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이보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자각해야 한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물론 관리감독자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리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 되듯이 책임을 져야 할 수장은 스리슬쩍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살짝 빠져나갈 것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용역업체 직원들과 비정규직 인력들. 자본의 논리 속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사고들은 이미 예견되어진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세상은 이제 금전만능주의로 순리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원칙은 항상 세상은 순리에 맡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낮은 곳은 반드시 높은 곳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
‘세상을 밝히는 자유’의 상징으로 뉴욕 항구에 높이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바르톨디라는 조각가가 20년간의 각고 끝에 이룬 작품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 조각품을 위해 미국에 준 4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그런데 기부금 모금이 지지부진하자 바르톨디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자기의 재산을 저당잡혔는데 그 바람에 살림이 어려워졌다. 바르톨디는 여신상을 구상하면서 어떻게 해야 ‘자유’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여러 방면에 걸쳐 모델을 찾았다. 여러 사람의 의견도 들었다. 어떤 유명한 미술가는 훌륭한 사상가를 묘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바르톨디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답을 찾았다. ‘우리 어머니를 모델로 하자.’ 이리하여 저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이 탄생하였다.

이번 구의역 사고에서처럼 하청업체 선정 시 막무가내 식으로 수익을 후려치는 한 안전매뉴얼은 공염불에 불가하다. 아무리 철저한 관리감독자라도 지금까지 하청업체를 선정하던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기술직의 목숨은 항상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으로 한 개그맨이 외쳤다.
“사람 생명보다 뭣이 중헌디!”

오늘날, 책임감 있게 일하면 안 되는 사회가 된 것일까?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청년의 어머니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풍자문학 발행인

김태봉 배상

소통인가? 불통인가? “싸움은 말리고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2016/06/24 08:02:34 from 1.231.229.91
Modify Delete Reply Write List
풍자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