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황바우

*지은이 : 배 기 호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447

*판   형 : A5(국판) / 반양장

*정   가 :  16,000원

*출판일 : 202112월 20<홈으로 가기>

*ISBN   : 978-89-5959-550-1 03810

 이 책은?

 
24회 문화 연예대상 소설 부문 수상작가, 배기호 장편소설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대를 한 권의 소설로 묶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문헌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료도 다소 포함되었지만 인터넷 홍수에 살고 있는 우리라 할지라도 그 시절을 견디며 살아온 어르신들의 증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흥분했고 결국 탈고를 이루어내었다.
 
참 이상하게도 기다렸다는 듯 그다음 달인 5년 전 홍석현 할아버지께서 96세의 일기로 타계하셨다. 당신께서 겪었던 참혹하고 잔인한 일제시대와 해방 그리고 육이오에 대한 증언뿐 아니라 중동에 갔던 여러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디 좋은 곳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책속으로... 
 
황바우
 
개마고원으로부터 낮지만 높은 밀도로 불어오는 음습한 바람조차 황바우의 인내력에는 아무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다.
벌써 두 시간째. 건초를 깔고 흰 천으로 위장한 채 아리사카 38보병 소총으로 겨누고 있는 표적은 다름 아닌 나무에 묶어놓은 자신이 기르는 개, 누렁이였다.
 
좁고 허허한 골짜기 아래로 형성된 시야에 확보된 얼음은 바닥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흐르는 물소리가 나는 듯했고, 바람에 점령된 나무들은 몸살을 앓으며 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소요를 작동하는 듯했다.
 
코 아래 미열에 녹은 눈이 가슴팍으로 스며들었다. 시렸다. 차가운 바람이 폐부로 스며들자 느슨하던 정신이 팽배하게 근육들을 다그치며 정신을 일깨웠다. 뭔가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낑낑대는 누렁이의 간접적인 몸부림이 그러했고 총을 겨누는 동물적인 감각으로도 직감할 수 있었다.
누렁이와의 거리가 오십 보 안팎이라 명중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시야를 막고 있는 허리만 한 나무 몇 동이를 생각에 넣지 않은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한 방에 쓰러뜨려야 한다.”
총신을 쓰다듬어 양 눈을 뜨고 가늠자에 오른눈을 갖다 댔다. 누렁이가 짖고 있는 방향 앞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출몰 모습이 대단하다기보다 거대한 입김을 분출하며 우악스럽게 나무와 눈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도 기이하고 위압감으로는 충분했다.
 
누렁이가 더욱 짖어대자 한쪽 눈을 고정시키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탕!’
왼 가슴을 내어준 곰은 일격에 도망치는 듯하다가 잠시 비틀거리더니 돌아서 은폐한 자신 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않고 다시 노리쇠를 당겨 이십 보 앞을 달려오는 곰의 미간을 향해 발사했다.
‘탕!’
그 자리에 쓰러진 어마어마한 곰은 스스로를 제어 못 하고 십여 미터나 몸을 던져준 다음 나무뿌리에 걸려 코를 눈 위에 처박고 죽었다.
 
“결국 바우가 잡았더래!”
자신보다 삼십 보 뒤쪽에서 은폐하고 있던 동식 아재가 둥지를 털고 뛰쳐나오며 고함을 질러댔다.
몸을 일으키자 긴장으로 심장은 마구 뛰었으나 얼어붙은 몸은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마비가 온 듯했다.
 
“고생했다.”
어눌한 조선말로 등을 토닥이는 일본인 산판감독관 유타로가 주머니에서 이십 환을 끄집어내 건넸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받은 황바우는 헐떡이고 있는 누렁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빌미로 조선의 나무를 모조리 꺾어 일부는 석탄을 끓여서 채취한 기름으로 전쟁의 발판을 삼기도 했다. 그래서 낮은 구릉이나 완만한 계곡을 이웃한 준령 등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령의 잡목까지 싸그리 베어 급기야 오지인 황지까지 와서 나무를 해야 했다.
 
유타로는 조선인을 이해할 줄 알고 형식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관행은 철저히 따르는 몇 안 되는 일본인 중 한 명이었다.
1937년 간도에서 황지로 소학교 교장과 감독관으로 부임해 온 그는 키가 작은 반면 체격이 다부지고 솔선수범의 생활로 많은 노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주위로부터 일본인으로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평판을 듣기도 했다.
 
“이놈 맞아, 이놈은 겨울잠도 엄써. 영식이 숙부랑 태우 아버지도 요놈한테 당했지 아매도… 썩을 놈, 내 언젠가는 바우한테 잡힐 줄 알았더래.”
동식 아재가 죽은 곰 대가리를 차며 분노를 폭발하였다.
“가자.”
줄을 풀어 놓자 누렁이가 마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총을 걸머쥔 황바우도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내일은 읍내에 댕겨와야 것는디.”
아버지 황천식이 해소로 가래를 뱉고 혼잣말인지 모를 듯 주억였다. 이부자리를 펴는 황바우의 마음은 심란했고 어질러 놓은 숯들로 봉놋방처럼 어수선하기 짝이 없어 괴로웠다. 아버지의 병이 그러했다.
“네… 제가 다녀올게요. 일찍 주무세요 아버지.”
“산적에 쓸 괴기하고 엄마가 좋아하던 미꾸리도 구해야 하는디.”
“엄동에 미꾸라지는… 암튼 알아서 할게요.”
 
아버지 안태고향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거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엄마 말에 근거하면 전라도 고창에서 처녀시절 아버지를 만났다 했지만 가끔 경상도 말을 인용하거나 때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으로 봐서 쫓기는 독립군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랫마을 소작으로 농사를 짓던 팽이 아재랑 싸우고 주재소에 다녀온 후로는 독립군 운운하던 개운하지 않은 생각은 말끔하게 정리가 됐다.
 
“팥 서 말에 감자 일곱 가마면… 응 보자… 용케도 십 환이구먼, 지난달 가져갔던 쟁기 값으로 이걸 다 지하고….”
정월달이 지난 지 이레가 넘었지만 읍내는 한산했다.
“무슨 소리예요? 팥 한 말에 감자 두 가만데, 있지도 않은 군 삯을 붙이길 왜 붙여요 단골인데.”
싸전가게 이 씨는 맹한 손님이다 싶으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불러 놓고 상황을 보는 약빠르다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다.
 
“글믄 지난달에 니가 가져온 걸 증명혀 봐.”
꼬깃꼬깃하게 접은 낡고 모서리가 해진 장부를 품에서 끄집어낸 황바우는 주변을 훑고 펼쳤다. 노지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햐~ 이게 뭔 글이여? 도통 몰라보겠네.”
“이걸 알아본다고?”
“난 한글도 모르는디.”
기괴한 그림과 숫자로 이루어진 장부를 보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씨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저번 달 초닷새에 팥 한 말에 감자 두 가마라고 여기 적혀 있네요.”
살쾡이 같은 눈을 하고 이 씨는 장부와 황바우를 번갈아보았다.
“이 장부를 니가 직접 작성했다고?”
“그런데요.”
못 미더웠는지 구경꾼들이 슬슬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럼 지지난달엔 뭘 주고 바꿔갔는지 장부에 적힌 대로 함 읊어봐.”
이 씨는 벼락같이 이야기하고 자신의 장부를 가져와 펼쳤다. 돌아섰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기웃거렸다.
“가만 보자… 지지난달, 그러니까 십이월 열사흘에, 강냉이 서 말 주고 십일 환 받아서 아버지 자시고 싶다던 탁주 세 배기 하고 황태 사갔는데요. 아니다 아니다, 이걸 빼먹었네.”
이 씨는 뭔 소리냐는 듯 장부 안을 들여다보았다. 상인들도 묘한 얼굴로 장부를 들여다봤다.
 
“그날 태성 아재 할머니 세상 버려서 부조금으로 십 환을 걷은 것도 여기 적혀 있어요.”
이 씨가 곰곰이 셈을 해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맞아, 태성이 할매 죽은 날이 지지난달 열사흘이 확실혀. 나가 그날 숯 배달허고 막걸리 억병으로 마시고는 집에 가서 여편네한티 제대로 바가지 긁힌 날이여.”
 
“누가 자네더러 입 거들라고 했나?”
숯쟁이 김 씨를 이 씨가 조용히 나무랐다.
“열사흘이 확실허다니께요?”
“아따 누가 그 입 보살 아니라고 하는감?”
 
이 씨는 다시 장부를 들여다보며 한쪽을 가리켰다.
“요긴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야그할 수 있겄제?”
“아 이건 장도리 형 장가가는 날이라고… 그날도 여기 싸전에 들렀는데 들깨 한 말 주고 쌀 닷 되 바꿔간 날이라고 적혀 있고 그날은 비가 엄청 쏟아져 저기 양주천 내림공사한 다리가 폭삭 내려앉아 부역하던 인부들이….”
“됐네, 됐어.”
 
사람들이 웅성이자 이 씨도 인정하는지 슬그머니 장부를 접어 탁자 위로 던졌다.
“내가 착각을 한 모양일세 그려… 팥 한 말하고 감자 두 가마 지하고 나머지 십 환 거슬러주면 되지?”
“그것보다 어디 미꾸라지 구할 데 없겠어요?”
“엄동에 그 뻘 것들을 어디서 구하겄어?”
갑자기 미꾸라지 이야기가 나오자 난처한 얼굴로 이 씨가 눈을 살짝 들어 올렸다.
“모레가 어머니 기일이라서 꼭 구해야 하는데….”
“꼭 미꾸리여야 되는 겨?”
 
“거 뭔 소리여?”
숯쟁이 말에 옹기장이 박 씨가 토를 달았다.
“암만, 미꾸리가 아니어도 고등어 달여서 갈아 놓으믄 미꾸리탕인지 고등어탕인지 분간을 못 한당께로.”
“그려? 아 그런 식술법이 있는지 나는 통 몰랐잖여.”
추어탕을 필두로 오징어젓 담그는 방법과 홍시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열거하다가 남도 식탁에 오르는 갈치와 홍어 삭히는 이야기로 유난을 떨며 사람들은 하나씩 자신의 일상으로 복귀했다.
 
제사에 쓰일 물건들을 사들고 귀가하던 길에 삼판과 학교 사이에 위치한 유타로 집에 잠시 들렀다. 취기가 잔뜩 오른 그는 인부들과 함께 마당에서 잡은 곰을 박피하고 있었다.
“이건 뭔가?”
“어머니 제사에 쓸 정종을 산 김에 유타로 선생님 생각이 나서 두어 병 나눠 쌌습니다.”
“안 그래도 인부들 마실 술이 부족하던 참에 조선말로 이게 웬 떡이야? 고마운 일인고….”
신이 난 인부들이 칼질에 박차를 가하자 유타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황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일은 도청에서 장비 점검하러 온다니까 일찍 깔깔이 시동걸어놓고 기름 점검도 해봐.”
깔깔이란 고개를 오를 때 엔진에서 나는 소리가 깔깔거린다 하여 인부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미군에서 사용하던 GMC G508을 산판에 맞게끔 개조하여 2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인근에 하나밖에 없는 트럭이었다.
넙죽 인사하고 유타로 집을 나오자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비록 일본인이라고는 하나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에 한없는 자긍심이 고개를 서서히 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 황천식은 15년을 산판에서 나무를 날랐다. 나이가 들고 병에 시달리면서 아버지 대신 노역을 감수해야만 했고 괭이나 쟁기 대신 톱이나 도끼를 후려도 노역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결코 비관만 하지 않았다.
 
황바우는 어떤 노역자보다 일에 열성적이었을 뿐 아니라 머리도 좋았다. 행동이 빠른 것은 차치하고 신중을 요하는 사냥에서 소총을 처음 잡던 날 늑대 두 마리를 생포하는 쾌거를 올렸다.
“머리나 가슴을 쏘지 않고 뒷다리를 쏴서 잡았다고?”
유타로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고 노역자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다.
재능을 알아본 유타로는 깔깔이는 물론 산판에서 사용하는 기계 일체의 운전과 정비를 가르치고 깨우치게 했다. 뿐만 아니라 황바우로 하여금 산골 산판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넓은 반면 그 이면에 어떤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가를 엄중하게 주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세상은 바우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마 천만 배는 더 클 거다. 아니, 그보다 더.”
만주에서 지냈던 어려운 이야기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독립군 이야기도 술이 들어가면 가끔 늘어놓으면서 곧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을 푸념 삼아 하곤 했다. 황바우는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알 턱이 없어 조선에서의 삶이 어려워서 그랬거니 하고 치부해 버렸다.
 
무기력하게 봄이 지나갈 즈음 건너 마을 같은 패거리 중 상호에게서 담배를 배웠다. 혀를 빼무는 여름이 한창일 때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분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를 처음으로 접했다. 읍내 옥천장 매미집에서였다.
궁지에서의 탈출 방법 중 가장 흔하게 쓰이는 기만술이 음주라 가정한다면 황바우는 자신을 투신해 탈출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유타로로부터 배웠다. 주재소 순사가 가져다준 날벼락 같은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더위가 절정을 이루는 8월 초순이었다.
“징집장이라….”
 
 - <이하 생략> <본문> 중에서 발췌
 
 
 
 이 책의 차례
 
 
작가의 말_ 5
 
제1부
 
황바우 _ 10
부산 _ 26
재판 _ 32
눈빠상 _ 39
성덕희 _ 51
임무 _ 56
기자회견 _ 70
여성식 _ 119
대통령 _ 125
특무대 _ 132
소풍 _ 154
똥장사 _ 164
 
제2부
 
상속자들 _ 182
율사 _ 207
요시에 _ 218
폭풍전야 _ 292
달고나 _ 299
도쿄 _ 319
2차 재판 _ 329
바람개비 _ 348
가는 비 오는 비 _ 385
그대, 가지 마오 _ 425
 
에필로그 - 446

 지은이 소개

배기호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15년 세월,
그러나 부끄럽지는 않다.
 
옥중에서 집필한 자서전『마바리』출소 후 출판
정유재란을 배경으로 한 조선특수부대『박장군』출판
2016년 제24회 문화 연예대상 소설 부문『박장군』수상

* 본 도서는 교보, 영풍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전국 유명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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