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지은이 : 유동완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376쪽 / 반양장본

*판   형 : A5(국판) / 본문 올 컬러인쇄

*정   가 : 18,000원

*출판일 : 2020년 620일        <홈으로 가기>

*ISBN   : 978- 89-5959-527-3 03910
                             
 

 이 책은?

우리나라 왕실역사의 대표적 비극 사건 중 하나가 조선 제6대 왕 단종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작은아버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였다. 충격적인 이 이야기는 시간성을 초월하여 지금도 빈번하게 회자된다. 이 이야기가 그토록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단종에 대한 동정심, 세조에 대한 분노감뿐 아니라 사건 이후 전개된 상황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을 저울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이야기 참여자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 등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단종 관련 이야기에 참여자의 주관적 관점이 작용하는 경우는 세조를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로 귀착된다. 여기에는 도덕이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임을 내세워 그의 업적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그가 단종에게 저지른 행위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치적이 그런 행위를 충분히 상쇄시킨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전자를 지지하고 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규범이 제대로 작동하고 그것에 대한 기대감 또한 충족되는 가운데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종이 불행한 삶을 살게 된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동안 생산된 대부분의 단종 관련 이야기는 그가 왜 그런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저자는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런 원인을 제공한 인물들이 세종과 문종임을 알았다. 물론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국정운영 과정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규범을 무시하거나 원칙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나 사회 지도자들에게도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단종 유배 길을 밝히고 있다. 단종 유배 길에 관련된 기록은 정사나 야사를 불문하고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지명설화 등에서 약간이나마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저자는 수년간 여러 분야의 관련문헌을 찾아보고, 유배 길로 추정되는 장소를 답사하면서 나름대로 확신이 가는 유배 길을 그려놓았다. 이 과정에서 유배 길 인근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책에는 단종이 왕으로 복위하는 과정을 기술하였다. 단종이 왕으로 복위하는 데 무려 24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유는 세조 이후 왕들이 단종 복위가 자신들의 왕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하여 아주 철저하게 계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왕들은 복위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왕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왕에 의해서 복위가 이루어졌다. 나아가 단종이 생물학적 삶을 마감하고 신적 존재로 승화한 것도 언급하였다.
 
- <이하 생략>
 
- 본문 < 지은이의 말> 중에서 발췌
 

 이 책의 차례

머리말 _ 4
 
1. 원손에서 세자가 되기까지 이홍위의 삶 _ 12
1) 이홍위 탄생과 세종의 기대 _ 12
2) 세종의 즉위 과정과 왕위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 _ 16
3) 인턴 왕이 된 세종 _ 22
4) 세종의 치세에 도움을 준 태종의 인척 및 사돈 제거책 _ 27
5) 경연을 활성화한 세종 _ 29
6) 집현전을 활성화하고 의정부서사제를 실시한 세종 _ 31
7) 세종의 애민정신을 형상화한 공법 제정 _ 33
8) 이홍위를 불행에 빠뜨리게 한 세종의 국정운영방식 _ 42
9) 세종이 중국어 발음기호로 만들었던 한글 _ 48
10) 세자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낸 세종 _ 53
11) 풍수지리 사상에 지배당한 세종 _ 61
12) 세자가 된 이홍위와 아버지 문종의 삶 _ 67
 
2. 조선 제6대 왕과 상왕으로서 이홍위의 삶 _ 72
1) 조선 제6대 왕으로 즉위한 이홍위 _ 72
2) 정순왕후 송씨를 아내로 맞이한 이홍위 _ 77
3) 이홍위 즉위 초부터 야심을 드러낸 수양대군 _ 80
4) 야심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된 수양대군의 북경행 _ 83
5) 야심가들의 구심체가 된 수양대군 _ 87
6) 수양대군 야심의 중간단계 실현인 계유정난(계유사화) _ 91
7) 고급 한량 안평대군을 역모자로 몰아 죽인 수양대군 _ 98
8) 공신들 위에 조선을 입헌군주국화한 수양대군 _ 108
9) 공신 엄자치를 토사구팽한 수양대군의 의도 _ 115
10) 계유정난(계유사화) 이후 분열된 왕실 종친 _ 117
11)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_ 120
12) 세조의 술판정치 _ 123
13) 의심 많은 세조 _ 131
14) 세조 제거와 이홍위 복위를 위한 거사 실패(병자사화) _ 134
15) 사육신의 탄생 _ 163
16) 금성대군을 역모자로 만든 신하들 _ 166
17) 이홍위 제거를 위해 송현수를 역모자로 만든 세조 _ 169
18) 의경세자를 위해 이홍위를 제거하려던 세조 _ 171
 
3. 노산군으로 강봉된 이홍위의 유배 생활 _ 174
1) 유배 여정 1일째(6월 22일, 화양정에서의 송별연) _ 179
2) 유배 여정 2일째(6월 23일, 광나루 → 도미나루) _ 186
3) 유배 여정 3일째(6월 24일, 도미나루 → 양근나루) _ 191
4) 유배 여정 4일째(6월 25일, 양근나루 → 이포나루) _ 193
5) 유배 여정 5일째(6월 26일, 이포나루 → 서원리 원골) _ 195
6) 유배 여정 6일째(6월 27일, 서원리 원골 → 흥원창) _ 204
7) 유배 여정 7일째(6월 28일, 흥원창에서 대기) _ 216
8) 유배 여정 8일째(6월 29일, 흥원창 → 뱃재) _ 219
9) 유배 여정 9일째(7월 1일, 뱃재 → 공순원) _ 225
10) 유배 여정 10일째(7월 2일, 공순원 → 청령포) _ 234
11) 청령포에서의 유배 생활 _ 245
12) 관풍헌에서의 유배 생활 _ 247
13) 노산군을 죽이도록 명분을 제공한 금성대군 역모설 _ 252
14) 노산군의 죽음 _ 258
15) 노산군의 주검을 지킨 엄흥도 _ 264
16) 영월 낙화암에 새겨진 충절 _ 268
17) 노산군을 불행으로 몰고 간 세종의 처첩 및 적서 차별 태도 _ 269
 
4. 단종이 된 이홍위 _ 276
1) 사육신과 이홍위를 철저히 거부한 예종 대 _ 277
2) 정치적 홀로서기를 통해 송현수의 역모죄 굴레를 벗겨준 성종 _ 278
3) 사육신의 절의를 인정하고 최초로 이홍위 묘에 제사를 지낸 중종 _ 281
4) 사육신을 부정했지만 이홍위 묘에 제사를 지낸 선조 _ 284
5) 사육신 배향이 건의된 효종 대 _ 291
6) 이홍위 무덤을 왕실 종친 무덤 수준으로 대우한 현종 _ 293
7) 왕권 강화를 위해 사육신과 이홍위를 이용한 숙종 _ 294
8) 영월 장릉을 조성한 숙종 _ 305
9) 영월 장릉의 특징 _ 310
10) 이홍위를 영월로 떠나보낸 뒤 정순왕후의 삶 _ 317
11) 죽은 뒤 더 고달팠던 현덕왕후 _ 326
 
5. 신(神)이 된 이홍위 _ 333
 
각주 해설 _ 339
 

 책속으로...

1. 원손에서 세자가 되기까지 이홍위의 삶
 
1) 이홍위 탄생과 세종의 기대
 
한여름 사나운 햇살로 달궈진 근정전 앞의 박석은 궁궐 사람들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회랑으로 숨어들려고만 하였다. 햇살은 경회루 연못물도 달구고 있었다. 물고기들도 못가 석축의 그림자로 숨어들려고만 하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깨는 것은 고목 속의 매미들뿐이었다. 이때 근정전 옆 동궁에서 탄생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회랑 속에 숨어든 사람들과 석축 그림자로 숨어든 물고기들을 긴장시키고 매미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세종의 손자 이홍위가 태어난 것이다. 1441년 7월 23일(양력 8월 9일)이었다. 경복궁 한가운데서 흘러나온 울음소리는 무더위에 지쳐 있던 만물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한 줄기 바람인 듯했다.
 
이홍위 탄생은 유교적 통치이념을 정착시키려는 세종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의 탄생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들린 곳은 동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자선당이었다. 이를 안 신하들은 세종에게 축하인사를 하며 기뻐하였다. 그러자 세종은 “세자의 연령이 이미 장년이 되었는데도, 후사가 없어서 내가 매우 염려하였다. 이제 적손嫡孫이 생겼으니 나의 마음이 기쁘기가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없다”라는 말로 화답하였다. 아울러 대사면령으로 많은 죄수들을 풀어주며 그들과도 기쁨을 나눴다. 세종의 기쁨은 세자의 후사가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주나라의 종법제도를 흡수한 유교적 통치이념에 따른 왕위계승 전통이 확립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홍위 탄생이 주는 기쁨을 나누려는 세종의 대사면령 교지 읽기를 끝마치기 전에 전상殿上의 커다란 촛불이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
 
왕손을 낳은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이홍위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이홍위는 아버지가 세자였을 때 태어났다. 어머니가 승휘(세자 첩)에서 양원을 거쳐 세자빈이 된 지 4년 반 정도 지날 즈음이었다. 이홍위는 세자빈이 낳은 적자이며 장자로서 세종의 왕권이 흘러갈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홍위의 어머니 세자빈 권씨는 세종의 사랑을 한없이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홍위를 낳고 사경을헤맸다. 세종은 그녀를 두세 번 문병하였다. 그러나 세자빈 권씨는 끝내숨을 거두었다. 여섯 살 먹은 평창군주(뒷날의 경혜공주)가 그녀 옆에서 목 놓아 울었다.
 
이홍위가 태어남으로써 원손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세종은 이홍위가 태어난 지 5일째 되는 날 “모든 사람의 원손이라고 이름하는 자는 모두 개명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원손은 이홍위에게만 불리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왕의 세자가 낳은 큰아들에게 불리는 보통명사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원손으로 불리는 것조차 못마땅해하였다. 이런것은 왕이나 황제 이름에 사용한 글자를 백성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피휘제도를 빌려 쓴 것이다. 그럴 정도로 세종은 이홍위를 얻은 것에 매우 흡족해하였다.
 
이홍위는 8살부터 본격적으로 왕이 되기 위한 교육에 들어섰다. 세종은 그가 8살 되던 해 초에 신하들에게 이홍위의 조회 위치에 대하여 물었다. 그를 조회에 참여시킴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고 국정운영방식을 느껴보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이 시기에 세종은 강서원講書院이라는 조선 최초의 세손 교육기관을 만들어 그를 교육시켰다. 이홍위가 왕세손임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그가 대궐을 출입할 때마다 말을 탄 8명의 별시위가 좌우로 나누어 인도하였다. 왕세손으로 책봉된 지 약 5개월이 지나자 입학의를 거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단 하루만 성균관 학생이었고 계속 강서원에서 공부하였다.
 
세종은 이홍위가 9살 때 칙서를 들고 온 명나라 사신들을 맞이하는 잔치를 그가 맡으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를 외교무대에 데뷔시 키려는 뜻이었다. 할머니 혜빈 양씨의 손길은 세자빈 권씨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혜빈 양씨는 세종의 후궁으로 그와의 사이에서 한남군·수춘군·영풍군을 낳았다. 따라서 그녀는 이홍위의 할머니였다. 그런그녀가 어머니 잃은 이홍위의 일상생활을 보살폈다. 여기에는 세종의 뜻이 작용했다. 이홍위가 태어날 때 그녀의 막내아들 영풍군은 7살이었다. 영풍군 역시 혜빈 양씨의 손길을 필요로 하던 시기였다. 또 이홍위는 한때 한진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생활하였다. 세종은 한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약간의 답례품을 주기도 하였다.
 
세종이 보듬은 이홍위의 삶에는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다. 세종은 이홍위에 대하여 기대감 못지않게 측은지심도 가졌다. 따라서 이홍위는 항상 그의 머릿속에 머물러 있었다. 예컨대 4살이었던 이홍위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세종은 나들이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20명의 특수병을 동원해 이홍위를 지키도록 했다. 하지만 다소 파행적인 그의 국정운영방식에서 발아된 특정한 종친2)의 야심은 또 다른 커다란 파행을 향해 질주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그종착지에 이홍위가 있었다. 즉 세종이 다양하게 국정운영에 개입시킨 아들 중 한 명은 자신의 야심을 키워가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홍위가 고립무원 상태에 놓이자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이하 생략>
<본문> 중에서
 

 지은이 / 옮긴이 소개

지은이 유동완
 
철학박사(한국외대)와 교육학박사(한양대) 학위를 받은 후 통섭적 지식을 쌓기 위해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거나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울러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한
저술에도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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