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우리 고대 국가 위치를 찾다 <제2권>

*지은이 : 전우성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480쪽 / 양장본

*판   형 : A5(국판)

*정   가 : 값 16,000원

*출판일 : 20221110일        <홈으로 가기>

*ISBN   : 978-89-5959-565-5 03900

 

 이 책은?
 
상세 이미지
 
 
주류 강단 사학계의 ‘젊은 역사학자 모임’의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비판 & 반론 & 올바른 비정)
한국 & 중국 정사 기록에 의하여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주류 강단사학의 식민사학을 파헤치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논란 사항 정립
고조선 및 삼국의 위치, 연진장성, 패수, 낙랑, 평양 등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 영역 재정립/고구려 및 고려 천리장성 조작 확인
 
- 광개토대왕의 활동 지역
- 고구려 장수왕 평양성 천도 사실 왜곡
- 온달 장군 활동 지역
- 고구려의 수당 전쟁 위치 조작
- 을지문덕 살수의 위치 왜곡
- 백제 한성의 위치
- 백제 개로왕 한성에 대한 고구려 장수왕 공격 사실 규명
- 백제 천도지 공주와 부여 위치 왜곡
- 백제 멸망 시 당나라 소정방 공격 루트 조작
- 나당 전쟁 위치 왜곡
- 신라인들의 진나라 출신 미반영
- 신라인들의 연나라 경과 이동 및 산동성 건국 사실
- 백제 동쪽 신라 서쪽에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낙랑국
- 왜의 산동성 신라 남쪽 육지 접경 사실
- 통일 신라의 영역 조작
- 후삼국시대 궁예, 왕건, 견훤의 활동지역
- 고려 천리장성 위치 조작
- 고려 영역 왜곡
- 고려 서희 강동 6주 조작
- 쌍성총관부, 동녕부, 철령의 위치 왜곡
 
 이 책의 차례
 
 
 
전 10권 중 <2권>
 
■요동군에 대하여_16
■요서군에 대하여_27
■임유관(현, 궁, 임삭궁)에 대하여_31
■마수산(책)에 대하여_63
■마읍산에 대하여_76
 
(1)고조선_85
 
(2)고구려_87
■중국사서 해석상 유념할 사항에 대하여_88
- 신뢰성 부족
- 왜곡과 혼란에 빠지지 않을 사전 인식 필요, 사서와의 교차검      증 필요
- 사전 인식과 교차검증 결과 우리 민족 활동 지역은 산동성 확인
■고구려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_100
① 고구려 관련 천리와 요동 개념 인식 제고_100
② 고구려와 현토군과의 관련성_102
③ 고구려 발상지 졸본 지역_103
④ 낙랑 개념에 따른 위치 비정_111
⑤ 말갈의 위치에 따른 비정_111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에 대하여_148
 
(3)백제_172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하여_263
■양직공도에 대하여_292
■임나에 대하여_303
■백제의 도읍 두 성에 대하여_309
 
(4)신라_355
■한반도 신라를 입증하는 경주 고분과 유물에 대하여_402
■탁수, 탁록의 왜곡에 대하여_416
■삼한에 대하여_427
 
·인용 사료 목록_457 / 참고 자료 목록_473
·지도 목록_476 / 도표 목록_479
<이하 생략>
 
 
 책속으로...
 
 
[요동군에 대하여]
 
 
요동군은 당시 요동군의 치소였던 양평현이 있었던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 북쪽 석가장시 행당현으로부터 호타하 동쪽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에 이르는 곳이다.
 
 
요동군의 위치에 대하여는 앞에서 고찰하였듯이 하북성 석가장시 북쪽이자 북경 서남쪽인 보정시 서남쪽에 위치하는 석가장시 북부인 행당현, 즉 요동군 치소인 양평현이자 양평성인 이곳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하북성 석가장시 무극현을 거쳐 그 동쪽으로부터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것을 증빙하는 자료는 산더미처럼 많다. 이곳에 요수와 관련된 양평현, 망평현, 요양현, 안시현이 있고, 패수와 관련된 험독현, 번한현이 있다.
각 지리지상 소요수 및 마자수 즉 압록수와 관련된 서안평현, 그리고【사료23】『삼국지』 <위서>「동이전」‘고구려전’과【사료24】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 고구려」[위씨춘추에 말하길 ‘요동군’ ‘서안평현’ 북쪽이다. 작은 물이 있어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구려’의 다른 종류를 명하여 ‘소수맥’이라 한다.] 에서 서안평현은【사료25】『통전』「변방」‘동이 하 고구려’에서 마자수(압록수)가 흘러 들어가는 안평성으로 지금도 그 명칭이 남아 있는 하북성 석가장시 동부인 형수시 안평현이다. 이곳은 위의 사서 기록상의 소요수와 마자수(압록수)로 비정되는 하천들이 지금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곳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사료77】『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15 고구려본기 제3 태조대왕(太祖大王) 94년 8월
 
후한의 요동군 서안평현을 습격하다(146년 08월(음))
 
〔94년(146)〕가을 8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 한의 요동군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습격하여 대방현령[帶方令]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잡아왔다.
 
상의 기록처럼 고구려가 바로 옆에 있어 끊임없이 재탈환 내지는 영역을 넓히고자 공략하였던 곳이다. 이곳이 나중에 고구려의 서쪽 경계지역이 되는데 이곳의 서쪽은 요동군이고 동쪽 북부 및 남부 모두 고구려가 된다. 그런데도 이곳을 당나라 이후【사료30】『신당서』「가탐도리기」압록강(鴨淥江) 북쪽에 있는 옛 안평현(安平縣)이었던 박작성(泊汋城) 그리고【사료23】『삼국지』 <위서>「동이전」‘고구려전’ 과 같이 명·청시대 학자들이 원본에 주석을 붙이면서 압록강 및 요수를 지금의 요하로 이동시켜 놓으면서 안평현을 지금의 요령성 요하 인근으로 옮겨 고구려의 활동무대를 그곳으로 한정하였다. 그러면서 그곳에 맞추어 원래의 위치 및 선대의 사서 기록을 왜곡하여 안평현이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듯이 압록수, 즉 호타하의 남쪽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압록수 북쪽으로 왜곡 비정하고 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리 강단 사학계는 이러한 사항을 살피지 않고 중국의 ‘춘추필법’에 의하여 쓰인 중국 후대의 기록만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또다시 왜곡하여 한반도 인근의 현재의 압록강을 당시의 압록수로 왜곡 비정하여 놓고, 원래의 압록수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된 안평현을 현재의 한반도 북부 압록강 하구 북안의 중국 측 단동시에 비정하고 있다. 연구하면 당연히 파악되는 왜곡사항을 학문 논리로 유지하면서 왜곡되기 이전의 원래 사서의 기록대로 역사를 전개하자는 재야 민족 사학계의 주장을, 영토가 넓으면 좋다는 욕망을 주장하는 이른바 근거 없는 비학문적 사이비, 유사 사학자들이 하는 비판이나 주장이라고 학문적 비판 아닌 비학문적 비난을 하는 주류 강단 사학계는 학문적으로 비판은 물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므로 본 저자는 이를 이 글에서 이행하고자 한다.
 
수당 전쟁 시 안시성은 요하에 있지 않고 하북성 호타하
북쪽에 있었다.
 
또한 안시현은【사료21】『수경주』「대요수」,「소요수」상의 대요수, 그리고【사료56】『삼국유사』「흥법」‘순도조려’ “고구려 때의 도읍은 안시성(安市城), 일명 안정홀(安丁忽)로 요수(遼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요수는 일명 압록(鴨淥)으로 지금은 안민강(安民江)이라고 한다.”상의 안시현 내지는 안시, 안시성으로 이는【사료22】『한서』 「지리지」1. 유주상의 요동군에 12) 안시현(安市縣)이 있다. 이곳에 당연히 요동군이 있다.
그리하여 수당 전쟁 시 당태종의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것이 이곳이다. 이곳은 지금도 존재하는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 북쪽인 지금의 호타하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된다. 그런데도 서안평 및 안평과 마찬가지로 당나라 이후 지금의 요하 인근으로 위치를 이동 변경하여 현재의 만주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의 동남쪽에 있는 영성자산성으로 추정하는 견해를 가장 유력시하고 있다. 물론 이는 주류 강단 사학계의 주장이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원래 안시현은 안평현(북안평, 서안평)과 같은 지역, 고구려 환도성과 같은 지역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안평현(북안평, 서안평) 북쪽에 안시성과 환도성이 있는 안시현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대요수와 소요수가 만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이들은 모두 같은 곳으로 원래 위치의 기록과 달리 중국 측과 우리나라 주류 강단 사학계의 현재의 비정인 안시성의 현재의 요하 동쪽 요령성 해성시 위치, 환도성의 압록강 중류 북부 길림성 집안시, 서안평의 요령성 단동시, 압록수의 압록강, 대요수와 소요수의 태자하와 혼하 내지는 압록강과 혼강(동가강) 비정, 수당 전쟁의 전쟁터의 요하 비정 등 제각각 서로 다른 비정은 사서 기록상 위치인 현재도 그 이름이 하북성 형수시 안평현에 남아 있는 곳의 비정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 모순은 본 필자의 연구 결과 한 가지 사실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역사 사실, 모든 우리 고대사에 해당된다. 수많은 사항이 맞지 않지만 한 가지만 추가로 확인하자면 안시현 내지는 안평현(북안평, 서안평)에 모이는 대요수와 소요수의 경우, 각각 요동군 치소인 양평현의 서쪽으로 흐르거나 가로질러 흐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 측에 의한 양평현 비정과 대요수와 소요수에 대한 태자하와 혼하 그리고 우리 주류 강단 사학계의 압록강과 혼강 내지는 동가강 비정은 사서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다. 즉 중국 측과 우리 주류 강단 사학계의 양평현 요령성 요양 비정에 의하면, 대요수와 소요수로 비정한 요령성 하천 모두 요양의 서쪽을 지나가거나 가로질러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양평현, 안시현 내지는 안평현(북안평, 서안평) 그리고 대요수와 소요수에 대한 하북성에서의 위치 비정은 모든 기록과 일치한다. 이 추가 사실 한 가지뿐만 아니라 위의 여러 불일치 사항이 다른 모든 사실에 의하여 중국 측과 우리 주류 강단 사학계의 요령성 내지는 한반도 북부 비정은 사서 기록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주류 강단 사학계의 교수, 학자, 연구가들은 어떻게 맞지 않는 사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의하여 모든 역사적 사실을 한반도 인근으로 비정하는지 본 필자는 놀랍고 안타까워 이것을 알리고자 한다.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정립하고 이를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고대사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원래의 기록이나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국 측의 실제 지명 왜곡 및 조작 이동 그리고 이에 의한 후대 학자들의 원래 기록에 대한 왜곡 주석, 그리고 이를 이용한 일제 식민 사학자들의 비학문적인 위치 비정, 그리고 해방 후 이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과 추종학파의 한국 역사계 장악에 따른 다른 역사 논리 철저한 배척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 자신들 논리와 다른 모든 연구, 논리에 대한 철저한 배제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류 강단 사학계는 고구려가 이곳에서 수당 전쟁을 치른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삼국사기』 상의 수당 전쟁 기록의 모든 지명과 상황이 요령성 요하 지방과는 절대 맞지 않고, 요동군이 실제로 있었던 하북성 석가장시와 형수시 그리고 보정시 일원 그리고 백제와 신라가 있었던 산동성 지방이 수당 전쟁이 치러진 곳이고 특히 하북성 지방은 이미 고구려가 영역을 차지해 장수왕 시절 수도 평양을 천도한 곳임을 증거하고 있다. 더군다나 『삼국사기』의 다음 기록을 보면, 안시성이 있는 안시현이 당시 주류 강단 사학계가 주장하는 주요 전쟁터였던 현재의 요령성 요하 인근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주류 강단 사학계는 이곳은 물론 그 배후인 한반도의 평양도 당나라가 점령하여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과 당나라 본국과의 중간지인 요하 인근에 사서 기록상의 일이 벌어질 수 없는 것으로 논리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안동도호부가 한반도 평양에 설치되지 않았거나, 안시현 즉 안시성이 요하 인근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안시성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고구려가 항복하였어도 항복하지 않았다. 안시성이 항복하지 않았는데 그 배후인 한반도 평양에 그들의 중요 거점인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비정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러한 비정은 성립되지 않지만 이것만이 아니고 수많은 사실이 이러한 비정의 잘못을 증거하고 있다. 현재 주류 강단 사학계의 수당 전쟁의 위치 및 안동도호부 설치 위치 왜곡 및 조작 비정에 대하여는 자세히 입증하여 설명할 예정이다.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발췌
 
 지은이 소개
 
지은이 _ 전우성
 
이 책의 저자는 충남 대전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감사행정학을 전공하였다. 관세청에서 근무하였으며 퇴직 후 현재는 관세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 특히 고대사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한편 고대사 왜곡 및 국민의 역사 인식 제고에 한몫을 한다는 일념으로
 
- 1998. 『한국 고대사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을지서적)
- 2015. 『다시 쓴 한국 고대사』 (매경신문)
 
출간 이후에도 왜곡이 바로 잡혀지지 않은 채 국민들의 역사 인식이 오히려 악화됨을 우려하여 고대사에 대한 중국정사와 우리 고대사서를 교차검증 연구한 결과 우리 고대사 전반이 한반도만으로 비정된 채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각고의 중국 및 우리나라 정사연구에 의하여 밝혀진 고대사의 진실과 이에 따른 올바른 위치 비정이 이루짐에 따라 이 저서를 저자의 마지막 결실로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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