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우리 고대 국가 위치를 찾다 <제4권>

*지은이 : 전우성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480쪽 / 양장본

*판   형 : A5(국판)

*정   가 : 값 16,000원

*출판일 : 2023115일        <홈으로 가기>

*ISBN   : 978-89-5959-570-9 03900

 

 이 책은?
주류 강단 사학계의 ‘젊은 역사학자 모임’의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비판 & 반론 & 올바른 비정)
한국 & 중국 정사 기록에 의하여 왜곡과 날조로 뒤엉킨
주류 강단사학의 식민사학을 파헤치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논란 사항 정립
고조선 및 삼국의 위치, 연진장성, 패수, 낙랑, 평양 등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 영역 재정립/고구려 및 고려 천리장성 조작 확인
 
- 광개토대왕의 활동 지역
- 고구려 장수왕 평양성 천도 사실 왜곡
- 온달 장군 활동 지역
- 고구려의 수당 전쟁 위치 조작
- 을지문덕 살수의 위치 왜곡
- 백제 한성의 위치
- 백제 개로왕 한성에 대한 고구려 장수왕 공격 사실 규명
- 백제 천도지 공주와 부여 위치 왜곡
- 백제 멸망 시 당나라 소정방 공격 루트 조작
- 나당 전쟁 위치 왜곡
- 신라인들의 진나라 출신 미반영
- 신라인들의 연나라 경과 이동 및 산동성 건국 사실
- 백제 동쪽 신라 서쪽에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낙랑국
- 왜의 산동성 신라 남쪽 육지 접경 사실
- 통일 신라의 영역 조작
- 후삼국시대 궁예, 왕건, 견훤의 활동지역
- 고려 천리장성 위치 조작
- 고려 영역 왜곡
- 고려 서희 강동 6주 조작
- 쌍성총관부, 동녕부, 철령의 위치 왜곡
 
 이 책의 차례
 
 
전 10권 중 <4권>
 
■ 하슬라, 니하, 우산성에 대하여_16
■ 말갈 관련 중국사서 기록 비판_50
 
(7) 왜_62
■ 독산성에 대하여_89
■ 구천에 대하여_103
■ 상곡군에 대하여_112
■ 어양군에 대하여_128
■ 우북평군에 대하여_130
■ 현토군에 대하여_134
■ 주류 강단 사학계의 현재 어설픈 시도에 대하여_153
■『삼국사기』 평양성 기록상 패수 오류 비정에 대하여_170
■ 낙랑군에 대하여_204
■ 대방(군)에 대하여_209
■ 낙랑군 교치설에 대하여_242
■ 중국의 우리 민족 역사왜곡 비판_256
■ 고구려 천리장성의 조작에 대하여_271
■ 칠중성에 대하여_290
■ 온달과 온달의 활동 지역에 대하여_362
■ 아차성, 아단성에 대하여_396
■ 나당전쟁의 위치에 대하여_406
■ 묘청의 반란 지역 서경에 대하여_447
 
·인용 사료 목록_459 / 참고 자료 목록_474
·지도 목록_477 / 도표 목록_480
 
<이하 생략>
 
 
 책속으로...
 
 
[[하슬라, 니하, 우산성에 대하여]
 
 
 
앞에서 잠시 왜에 대하여 설명할 때와 바로 앞에서 인용한,
 
【사료94】『삼국유사』 卷 第一 제1 기이(紀異 第一) 말갈(靺鞨)과 발해(渤海)
 
또 ≪삼국사(三國史)≫에 이르기를 “백제(百濟) 말년에 발해와 말갈과 신라가 백제의 땅을 갈랐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말갈발해(鞨海)가 또 갈라져 두 나라로 된 것이다.)
[신]라(羅) 사람들이 이르기를 “북쪽에는 말갈이 있고 남쪽에는 왜인이 있고 서쪽에는 백제가 있으니 이것들이 나라에 해악이다.”라고 하였고 또 “말갈의 땅은 아슬라주(阿瑟羅州)(註 338)에 접하였다.”라고 하였다.
 
註 338
오늘날의 강원도 강릉시 일대에 해당한다.
 
신라 북쪽에 있던 말갈과의 경계에 신라의 영역인 아슬라주가 있었다. 이 아슬라주는 하슬라주로써,
 
【사료255】『삼국사기(三國史記)』 卷 第三 新羅本紀 第三 나물(奈勿) 이사금(尼師今) 42년 7월
 
하슬라에 흉년이 들어 죄수를 사면하고 세금을 면제하여 주다 (397년 07월(음))
 
42년(397) 가을 7월에 북쪽 변경의 하슬라(何瑟羅)(註 001)에 가뭄과 누리의 피해가 있어 흉년이 들고 백성이 굶주렸다. 〔이에〕 그 지역의 죄수를 사면하고 1년 동안의 조세[租]와 공물[調]을 면제하여 주었다.
 
註 001
하슬라(何瑟羅) : 현재의 강릉(江陵). 본서 권35 잡지4 지리2에 명주(溟洲)는 본래 고구려(高句麗) 하서량(河西良) (하슬라(何瑟羅)라고도 쓴다.)인데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명주로 고쳤고 고려 때까지 그대로 썼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본래 고구려 지명이라고 한 것은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 소속 군현(郡縣)에 일률적으로 부여된 것이기 때문에 각 지역의 소속 변화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파악이 필요하며, 본래 지명이라고 한 것은 경덕왕 때 고치기 직전의 지명으로 보아야 한다. 즉 경덕왕 때 하서량을 명주로 개정했다는 것이다. 명주라는 지명은 본서 편찬 때까지도 유지되다가 고려 충렬왕(忠烈王) 34년(1308)에 강릉(江陵)으로 고쳐서 부(府)로 만들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44, 강릉대도호부). 조선시대 강릉부의 중심지는 강릉대도호부 관아가 있는 용강동 일대였으며, 객사문(客舍門), 즉 임영관(臨瀛館) 삼문(三門)이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그 시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지역의 대표적인 신라 고분군인 초당동고분군은 거기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고분군이 조영된 시기, 즉 5~6세기의 신라 거점은 초당동 일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초당동 인근 강문동에서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기에 사용된 둘레 약 1㎞의 신라 토성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생략)
 
【사료256】『삼국사기(三國史記)』 卷 第三 新羅本紀 第三 눌지(訥祗) 마립간(麻立干) 34년 7월
 
하슬라성 성주가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죽이다 (450년 07월(음))
 
34년(450) 가을 7월에 고구려의 변방 장수가 실직(悉直)(註 001)의 들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하슬라성(何瑟羅城)(註 002)의 성주(城主) 삼직(三直)이 군사를 내어 갑자기 공격하여 그를 죽였다. 고구려왕이 그것을 듣고 노하여 사신을 보내 말하기를, “내가 대왕과 더불어 우호를 닦아 매우 기쁘게 여기고 있었는데, 지금 군사를 내어 우리의 변방 장수를 죽였으니 무슨 의미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왕이 겸허한 말로 사과하자 곧 물러갔다.
 
註 001
실직(悉直) : 현재의 삼척. 본서 권3 신라본기3 나물이사금 40년(395) 8월조의 주석 참조.
 
註 002
하슬라성(何瑟羅城) : 현재의 강릉. 본서 권3 신라본기3 나물이사금 42년(397) 7월의 주석 참조.
 
신라 초기부터 신라 북쪽 변경의 땅이었다. 그런데 이 땅을 주류 강단 사학계에서는 지금의 강릉으로 비정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라 영역을 경주 지방으로, 한사군의 낙랑군을 평양으로 비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시대 초기에 나타나는 말갈을 예, 즉 동예로 보아 이의 위치가 신라와 백제와 가까운 동쪽 바다에 위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빌미이자 증거로 삼는 것이 『삼국사기』의 비정이다. 그런데 보복 차원에서 고구려가 신라 서쪽 변경을 침략하였다고 한다. 주류 강단 사학계가 한반도에 비정하는 고구려와 신라에 있어서는 고구려가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야 정상이지 서쪽 변경을 침략하지는 못한다. 주류 강단 사학계의 비정대로 한반도라면 서쪽에는 백제와 가야가 있지 고구려가 없었다. 고구려는 신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공격하려면 동쪽은 백제가 있어 불가능하므로 북쪽을 침략하여야 한다. 이는 명백히 한반도임이 의심되는 사항이다.
 
【사료257】『삼국사기(三國史記)』 卷 第四 新羅本紀 第四 지증(智證) 마립간(麻立干) 13년 6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다 (512년 06월(음))
 
13년(512) 여름 6월에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여 복속하고 해마다 토산물[土宜]을 공물로 바쳤다. 우산국은 명주(溟州)(註 003)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鬱陵島)라고도 부른다. 땅은 사방 100리인데,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다.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羅主)가 되어 이르기를, “우산국 사람들은 어리석고도 사나워서 위력(威力)으로는 오게 하기 어렵지만, 꾀를 쓰면 굴복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무로 사자(師子) 모형을 많이 만들어 전선(戰船)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거짓으로 알리기를,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곧 이 맹수를 풀어서 밟아 죽이겠다.”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몹시 두려워 곧바로 항복하였다.
 
註 003
명주(溟州) : 오늘날 강원도 강릉시로 비정된다. 본서 권제35 잡지 제4 지리2에서 “명주(溟州)는 본래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何瑟羅)라고도 썼다 이었는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 … 경덕왕 16년(757)에 명주로 고쳤다.”라고 전한다. 이에 따른다면,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으로, 혹은 울릉도라고도 부른다[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 或名鬱陵島].’라는 위 기록은 경덕왕 16년 이후의 통일신라 또는 고려 전기에 개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삼국사기』의 심각한 오류가 또 있다. 물론 이 기록이 당시의 편찬자들이 기록하였다는 전제에서이다. 하지만 본 필자가 파악하기로는 『삼국사기』의 심각한 오류 즉 삼국의 역사를 한반도로 비정하는 기록이 상당히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당시 편찬자들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였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위 기록에 대한 주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후대 즉 『삼국사기』 편찬 이후 어느 시기에 『삼국사기』의 원래 기록을 바꾸어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류 강단 사학계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시점과 관점에 대하여는 의견이 다르다. 주류 강단 사학계는 그 시점을 고려 전기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울릉도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의 잘못된 위치 비정을 덮으려고 핵심을 흐리기 위하여 핵심사항을 호도한 것이다. 이는 울릉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위치를 비정한 명주가 문제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고려 전기라고 하였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 글에서 거론한 다른 여러 사항과 마찬가지로 고려시대에 편찬되어 판각되어 출판된 이후 1512년(중종7)에 새로이 판각된 정덕본으로 현재의 정본으로 삼고 있는데 이때 지독한 주자학 제일주의와 소중화 사대주의에 의하여 기자조선 및 사상 등 우리 고대 국가의 모든 역사를 한반도로 귀착시키는 역사 인식에 따라 한반도로 비정한 의혹이 있는 이 판본에서 고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하슬라주에 대하여는 당시의 기록 즉 지증 마립간 13년, 512년에는 명주가 있지도 아니하였다. 명주는 『삼국사기』에서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는 듯이 소위 통일신라 후 고구려의 땅이었던 하서량(일명 하슬라)을 신라가 차지하여 명주로 고친 것으로 기록하고 있듯이 실제로,
 
【사료189】『삼국사기(三國史記)』권 제35 잡지 제4 지리(地理)二 신라(新羅)
 
명주
 
명주(溟洲)(註 423)는 본래 고구려(高句麗) 하서량(河西良)(한편 하슬라(何瑟羅)라고 쓴다.)인데, 후에는 신라(新羅)에 속하였다.
가탐(賈耽)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지금 신라(新羅) 북쪽 경계인 명주(註429)는 대개 예(濊)(註 430)의 옛 국가이다” 하였다. 전사(前史)에서 부여(夫餘)를 예의 땅이라고 함은 잘못인 듯하다.
선덕왕(善德王) 때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신(仕臣)을 두었다. 태종왕(太宗王) 5년·당(唐) 현경(顯慶) 3년(658)에 하슬라(下瑟羅) 지역이 말갈(靺鞨)과 서로 맞닿아 경(京)을 없애고 주(州)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명주로 고쳐 삼았다. 지금까지 그대로 따른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4개이다.
 
註 423
지금의 강원도(江原道) 강릉시(江陵市)로 비정한다(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1996, 231~232쪽).
 
註 429
지금의 강원도(江原道) 강릉시(江陵市)로 비정한다(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하, 을유문화사, 1996, 231~232쪽).
 
註 430
상고시대 한반도 동해안 지역에 존속했던 종족들의 정치체로서 ‘동예(東濊)’라고도 하며, 그 위치는 대체로 강원도(江原道) 일대로 비정된다. 이 지역은 위만조선(衛滿朝鮮)에 속하였다가 그 멸망과 함께 한군현(漢郡縣)으로 편제되었으나, 후한말(後漢末) 이래 대부분 고구려에 예속되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57쪽).
 
경덕왕 16년, 757년에야 하서주를 명주로 고치는 등 9주 5소경을 확정짓는 시기에 명주가 탄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발췌
 
 지은이 소개
 
지은이 _ 전우성
 
이 책의 저자는 충남 대전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감사행정학을 전공하였다. 관세청에서 근무하였으며 퇴직 후 현재는 관세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 특히 고대사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한편 고대사 왜곡 및 국민의 역사 인식 제고에 한몫을 한다는 일념으로
 
- 1998. 『한국 고대사 다시 쓰여져야 한다』 (을지서적)
- 2015. 『다시 쓴 한국 고대사』 (매경신문)
 
출간 이후에도 왜곡이 바로 잡혀지지 않은 채 국민들의 역사 인식이 오히려 악화됨을 우려하여 고대사에 대한 중국정사와 우리 고대사서를 교차검증 연구한 결과 우리 고대사 전반이 한반도만으로 비정된 채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각고의 중국 및 우리나라 정사연구에 의하여 밝혀진 고대사의 진실과 이에 따른 올바른 위치 비정이 이루짐에 따라 이 저서를 저자의 마지막 결실로 내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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