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노란 크림빵

*지은이 : 이 광 진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240쪽 / 반양장본

*판   형 : 新A5(신국판)

*정   가 : 12,000원

*출판일 : 2012년 10월 5일     <홈으로 가기>

*분   류 : 문학 > 에세이

*ISBN   : 978-89-5959-327-9 03810

 

 이 책은?
 
 
아주 오래된 책들을 들여다본다. 그 시절 어렵사리 한 권씩 사 모았던 책들을 둘러본다. '전쟁과 평화', '셰익스피어', '죄와 벌', '쿠오바디스', '에덴의 동쪽'… 끝내 읽기를 포기한 '악의 꽃'도 보인다. 지금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리샤 로오마 신화'(을유문화사 1974)는 한자가 무척 많았다. 옥편玉篇을 옆에 놓고 토를 달아가며 읽었던 책이다. '뚜르게네프' 1, 3권도 있다. 이 책은 산 게 아니라 잠시 아르바이트하던 서점에서 가져온 것이다. 고백하건대 책은 판매대 위에 있지 않았고, 창고 시렁 위에 있는 것을 먼지를 털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먼지는 30년 전에 털었는데 그 후로 갖다놓을 시렁을 잃어버렸다.
 
나는 책장의 위 칸에서 이윤기의 신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찾아본다. 컬러 표지가 눈에 얼른 들어온다. 반질반질한 표지가 손끝에 착 달라붙는다. 가로로 된 큰 글씨체가 시원하다. 쪽마다 화려한 컬러사진이 붙어 있어 호기심을 북돋운다. 예전 책과 비교하니 비주얼쇼크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러니 아들이 아버지의 손때 묻은 책을 탐할 리가 없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무겁기만 하고 화장지보다 쓸모가 없으니 버린들 아까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들은 내 젊은 날의 지문이 남아있는 책들이다. 사춘기의 울분을 달래주던 친구였고, 가난과 외로움을 잊게 해주던 애인이었다. 문학으로 청춘을 미장하고 미래의 꿈을 키우겠다는 외침도 한 번 없이, 그냥 조용히 곁에 머물러 있음으로 나를 부유富裕하게 해주던 손난로 같은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아버지와의 추억도 묻어 있다.
 
'월탄 삼국지'(어문각 1974) 다섯 권은, 내가 고3 때 교외실습 나가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다드린 책이었다. 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30촉 알전구 아래서 모슬렘이 코란을 읽듯 방바닥에 놓고 정독情讀을 하셨다. 하루는 밖에서 돌아오니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고희古稀가 다된 아버지는 얼굴을 들이대며 대뜸 관우가 죽었다!며 침통해 하셨다.
 
지은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마흔부터였다. 표지가 붉은 책 '고운님 여의옵고'를 내는 데는 꼬박 6년이 걸렸다. 글솜씨도 없는 데다 직장이 건설현장이고, 글의 주제가 역사이니만큼 자료수집에 많은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책 '노란 크림빵'은 5년 만의 발행이다. 여전히 직장은 건설현장이지만 글의 주제는 역사보다 가벼운 생활수필이고, 말 그대로 경수필輕隨筆이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라며 큰 기대는 접어주시길 바란다. 글쓰기는 나 스스로를 위무하고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다음 책은 수년 안에 나올 것이고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책표지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15년쯤 또 흐르면 관우가 죽었다!―1,800년 전에 죽은 관우를침통해 하시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된다. 그때쯤이면 표지색이 빨주노초파남보인 책들을 둘러보며 자족의 웃음을 히죽히죽 웃는 노인의 모습이 예감되는 요즈음이다.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본문 <들어가기 전에)에서 인용
 책속으로...
 
흑백 영화 같은 장면 하나가 있다. 배경은 부산 남포동의 피닉스 호텔 건너편, 지금 남포 사거리의 자갈치 쪽 방향이다. 황량한 시멘트 보도블록 위에는 겨울을 버티고 있는 깡마른 가로수가 차로와 인도의 경계에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한 가로수를 붙들고 있는 초로의 부인이 있다. 청보라 두루마기를 입은 부인은 흐느끼고 있다. 잎새 하나 없는 플라타너스 나무기둥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다. 부인의 등 뒤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허옇게 버짐 먹은 얼굴에 동상 걸린 귀때기가 시커먼 사내애가 부인의 소매 끝에 매달려 덩달아 울상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다. 사내애는 부인의 소매를 끌어당긴다.
어머니,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내년에 인문계 고등학교 갈게요. 실업계 보내는 게 마음 아프다고 늘 그러셨잖아요.
그 말에 부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쪽찐 머리를 끄덕이며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앙다문다. 자갈치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칼날 바람이 가로수 잔가지를 치며 지나간다.
 
어머니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元山이다. 전쟁으로 실향민이 되셨고 피난지 부산에서 같은 처지의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으셨다. 어머니는 좋은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넉넉한 생활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전쟁이 허물어놓은 어머니의 인생 후반기는실향민의 대부분이 그러했지만인고의 나날이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집안에서 한복 짓는 일을 맡아 하셨다. 좁은 방 안에는 늘 치마저고리의 화사한 옷감이 펼쳐져 있었고, 발로 젓는 재봉틀 소리가 탈그닥거렸다. 나는 재봉틀 아래서 알록달록한 옷감자투리를 만지며 놀았다. 가끔 내가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일은 바늘귀에 실을 꿰어 드리는 일이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자랑스러웠고 가슴이 뿌듯하였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눈이 나빠지신 어머니는 수술 후에도 가끔 한복을 지을 때가 있었으나 그저 용돈벌이 정도에 그쳤다. 살림이 쪼들렸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하시는 구멍가게의 한편을 쪼개 빈대떡을 부치기 시작하셨다. 빈대떡은 제법 인기가 있었는데, 손님이 앉을 수 있는 식탁은 하나뿐이어서 대부분 저녁에 안주로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는 손수건만 한 유리창 앞에 앉아 늦게까지 빈대떡을 부치셨다. 그 당시 우리 집 방바닥에는 크고 작은 그릇들이 늘 펼쳐져 있었고, 해가 지면 맷돌 돌아가는 소리가 밤늦도록 드르륵거렸다. 마른 녹두껍질을 벗기기 위해 한 번을 갈고, 물에 불린 녹두를 죽처럼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을 갈았다.
나는 학교를 다녀와 주로 밤중에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맷돌을 돌렸다. 막대 손잡이를 아래위로 같이 쥐고 어머니와 호흡을 맞춰가며 돌렸다. 어머니의 손은 맷돌도 돌리고 맷돌 구멍에 녹두도 집어넣느라 쉴 틈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와 아들은 마주 앉아 무슨 이야기를 하였을까. 늦은 밤까지 도란도란 말이 아주 많았었는데….
 
아버지의 가게는 갈수록 어려워졌고 우린 이삿짐을 두 번이나 쌌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던 재봉틀도 팔아치웠다. 아버지는 남은 돈을 털어 양계養鷄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경험이 없어서 사들인 어린 닭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주로 압사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해 겨울은 매우 추웠는데 우리 식구에게는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 닭장 속에는 연탄난로를 피웠다. 어린 닭들은 서로 난로 가까이에 몸을 들이밀었다. 난롯가에 닭들이 층을 쌓으면 재빨리 작대기로 닭들을 흩어놓아야 했다. 새벽에 언 몸을 녹이며 잠시 졸다가 닭장을 나가 보면 어느새 닭들은 난롯가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닭들을 흩어놓고 보면 맨 밑에 깔린 닭들은 납작하게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깔려죽은 닭들이 아까워서 한두 마리를 골라내 소주 안주를 하셨다. 방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앉아 한숨과 함께 뜯는 그 닭은 어떤 맛이었을까. 병아리 티를 겨우 벗어난, 차라리 병아리에 가까운 닭이었다. 그런 혹독한 겨울에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인문계로 보내겠다고 입버릇처럼 뇌시었다. 그래야 대학도 가고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실력이 되질 못했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서라도 인문계에 가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들은 학비가 면제되는 국립고등학교를 택했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서라도… 하셨지만 이미 목소리에 힘이 빠지셨다.
입학금 등록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립이라 입학금도 저렴하였다. 실습비와 교재비가 전부였다. 그러나 숨 막히게 살기가 힘든 때이니 부모님은 서로를 믿고만 계셨나 보다. 내가 달력을 가리키며 내일이 마감이라고 하였을 때, 두 분은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피하셨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나를 앞세워 고향인 원산서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을 찾아갔다. 남포동 영도다리 아래에서 건어물 도매사업으로 성공한 부잣집이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 동생이라 불리던 아주머니는 방안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흑백 TV화면은 무지하게 컸다. 어머니는 마치 TV를 처음 본 듯이 부러운 찬탄을 연발하셨다. 돈 많은 집은 확실히 다르다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띄워졌을 때, 어머니는 조심스레 본론을 끄집어냈다.
동생, 아이 입학금 아닌가. 금방 갚을 테니 좀 빌려주게나.
<이하 생략> 
- 본문<노란 크림빵> 중에서
 출판사 서평
 
추억할 수 있는 그 시절이 있기에 삶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리 모두가 가난하고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는지 눈물이 맺힌다고 지은이는 회상한다. 요즘도 지은이는 휴일 아침이면 가끔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그럴 때면 꼭 노란 크림빵 하나를 챙긴다. 빵 이름이 슈크림 빵이라고 지은이 아내가 정정을 해주지만 그래도 지은이는 노란 크림빵이라 한단다. 옛날의 그 황홀했던 맛은 결코 아니지만 지은이에게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노란 크림빵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본서 글은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내용은 감동으로 코끝이 찡하기도 하다. 또한 7080세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이에게 추억여행으로 떠나게 하는 시간이 되리라.
 이 책의 차례
 
들어가기 전에 / 5
 
PART 01
구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_ 14
사랑받기 위한 사람 _ 20
땅에 사는 가치 _ 27
외로운 사냥꾼 _ 33
건설이란 _ 38
술 _ 44
담배 _ 54
오뎅 _ 59
조영남을 읽다 _ 63
 
PART 02
바람
‘놈’과 ‘분’ _ 94
외연도外煙島 _ 100
남산, 렛잇비 _ 111
노란 크림빵
운주사 가는 길 _ 117
어느 천재의 자명소自明疏 _ 122
휴일을 재미없게 보내는 방법 _ 128
개에게 영혼이 있는가 _ 136
남자의 굳은살 _ 141
내 24살의 상처 _ 148
 
PART 03
노란 크림빵 _ 156
珍이 _ 163
21세기 빈처 _ 170
노무현, 조광조 _ 176
죽음을 함부로 말하지 마라 _ 181
말코와 짱구 _ 188
우리들의 70년대 _ 192
제갈諸葛과 항우項羽 _ 202
마지막 장강長江 _ 212
福酒가 중국으로 떠난 까닭은 _ 216

 지은이 소개

지은이 이광진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국립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 울산과학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직장과 건설현장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여행과 별미를 좋아하여
낯선 곳을 싫어하지 않았다.
지금은 성창 E&C(주)의 소장으로
인천 영흥도 건설현장에 있다.
 
저서
역사기행문 <고운님 여의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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