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피의 종착지

*지은이 : 이준혁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176쪽  / (문학 소설)

*판   형 : A5(국판) /반양장

*정   가 : 8,000원

*출판일 : 2020315일    <홈으로 가기>

*ISBN   : 978-89-5959-520-4 03810

 이 책은?
<피의 종착지><쫓겨난 짐승>, <괴로운 짐승>에 이어 세 번째 소설이다.
소설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이게 소설이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자아내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 <편집자>
 
 책속으로...

    이곳이 조선이었다.

    이케는 벨기에에서 수입한 벽돌로 지은 경찰서 2층에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부두 노동자들이 짐을 부두로 옮기고 있었다. 날씨가 추웠지만 일꾼 몇은 햇볕 드는 구석에서 거적을 덮고 잠을 자고

    있었다. 밥을 먹는 일꾼들도 있었다. 그들은 반찬 없이 밥을 먹었다.

    식사를 빨리 마친 일꾼 몇 명이 모여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경찰서 맞은편 잡화점 앞에 인력거가 섰다. 인력거 안에서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내렸다. 여자가 주머니를 뒤져 돈을 꺼내는 동안 인력거꾼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자가 돈을 인력거꾼의 손에 떨어뜨리자 그는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 옆으로 더러운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오른손에 4살쯤 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등에는 아기를 업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이케, 뭘 봐?”

    후지이가 말했다.

    “그냥 거리 구경하고 있었어.”

    이케가 말했다.

    “뭐가 있는데?”

    “특별한 건 없어. 늘 보던 풍경이지.”

    “나가서 담배나 피우자.”

    둘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교회 종탑이 울렸다.

    “예배 5분 전이군.”

    “그리고 우리 점심시간도 다 되어가고.”

    “순찰 좀 돌고 점심이나 먹고 오자.”

    후지이가 말했다.

    “좋지.”

    이케가 말했다.

    이케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먼지투성이의 일꾼들을 바라봤다.

    이게 조선이지!

    이케는 담뱃재를 털어 불을 껐다. 

    압록강 철교를 순찰하던 일본인 경비교관 둘이 죽었다. 총알은 모두 그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총성은 두 발뿐이었다. 실력 있는 저격수가 조선 내에 잠입했다. 일본 경찰은 국경과 국내 경비를 강화했다. 

    늘 그렇듯 모든 사람들이 불순 세력으로 보였다. 반대로 체제 순응자로 보이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여승무원과 승객이 표와 돈을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은밀한 지시가 오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버스 여승무원이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땀 닦는 수건을 허리에 차지 않고 머리에 묶은 부두 노동자도 의심스러웠다. 왜 허리에 수건을 두르지 않고 머리에 묶고 있을까? 조선 독립군끼리의 식별 표시 같은 게 아닐까? 이케는 걸음을 멈추고 그 부두 노동자를 잠시 바라보았다. 별다른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이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 전당포 주인은 조선 시대 명문가의 후손이다. 몇 대 위 조상이 좌의정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전당포를 열기 전 조선인이 건립한 학교에 거액을 기부한 적이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은밀히 독립운동가를 양성해 왔다. 일본 경찰에게 그 사실이 발각된 이후 그 학교는 폐교되었다. 그 뒤로 전당포 주인은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 그것도 옛날 일이었다. 전당포 주인은 손해를 만회하고자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조선인들에게 여러 구실을 붙여 담보물의 가격을 후려친 뒤 턱도 없이 작은 돈을 빌려주곤 했다. 

    햇볕 드는 거리 한 구석에는 오래전 훈장이었던 노인 하나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땅바닥에 펼쳐놓은 보따리 위에 옛 서적을 올려놓고 그 책 중 하나를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과거제는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구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런 구닥다리들은 일찍 죽었어야 했다. 아무 쓸모없으니까. 누가 뭐라고 말하든 그게 더 나았다. 

    이케가 기억하는 몇 년 동안 노인은 책을 한 권도 판 적이 없었다.

    오래전 프랑스에서 온 서적수집가가 노인의 책 몇 권을 비싼 값에 사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끝이었다. 노인은 매일 그런 행운을 기대하며 이 거리에 와서 보따리를 펼쳐놓고 책을 팔았다.

    차라리 영어 사전이나 팔지. 이케는 담뱃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후지이에게 하나를 건넸다. 후지이가 성냥에 불을 붙여 이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노인은 해가 지면 팔리지 않는 책들을 보자기에 담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우연한 행운을 기대하며 다시 이 자리에 앉아 책을 팔 것이다.

    “오늘 퇴근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후지이가 말했다.

    “좋지. 어디로 갈까?”

    이케가 말했다.

    “소고기 전골 어때?”

    “그래.”

    두 사람은 담배를 길바닥에 던지고 다가오는 버스를 탔다. 이케는 버스 안을 훑어보았다. 학생 열 명, 양복 입은 남자가 셋, 나이 든 여자 둘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이케는 학생들 가슴팍에 붙은 이름표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살펴봤다.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다리를 꼬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이케는 잠시 남자를 지켜보았다. 남자는 신문을 한 장 넘겼다.

    “이봐, 후지이.”

    “왜?”

    “오늘 저녁 약속을 미루지. 할 일이 있었는데 이제 생각났어.”

    “좋아.”

    “경찰서로 가서 보고 좀 해줘. 특이사항 없다고. 나는 이대로 가겠네.”

    후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가 경찰서 근처 정류장에 서자 후지이가 버스에서 내렸다. 이케는 버스 좌석에 앉아 계속 남자를 지켜보았다. 경찰서에서 두 정거장을 더 지나자 남자가 신문을 접고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남자가 버스에서 내리자 이케도 남자를 따라 내렸다. 남자는 정류장 근처 찻집으로 들어갔다. 이케는 남자가 들어간 찻집에 들어가지 않고 맞은편 카페로 들어갔다.

    이케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담배를 피웠다. 그동안 자신을 뒤따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커피를 다 마시는 동안 그 찻집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이케는 계산을 하고 카페를 나와 맞은편 찻집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찻집 구석 탁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이케는 남자 맞은편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남자는 이케가 담배에 불 붙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케가 재떨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담뱃재를 털었다.

    남자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오랜만이군.”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이케가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차를 다 마신 후 근처 중국 요릿집으로 갔다. 탕수육을 주문하고 종업원에게 재떨이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종업원이 물이 담긴 사기그릇을 가져왔다.

    “이게 뭔가”

    이케가 말했다.

    “재떨이요.”

    종업원이 말했다.

    “이 가게 재떨이는 어디 가고?”

    “조국의 부름을 받았죠.”

    “재떨이까지 가져가던가?”

    “쇳덩어리는 모두 가져가죠. 우리 가게에도 식칼이랑 무쇠 솥 빼고는 쇠붙이라곤 없어요.”

    “알았다. 배갈 있지? 따뜻하게 데워서 한 병 가져와.”

    종업원이 떠나고 두 사람은 담배를 피웠다.

    “요즘 비상 상황이긴 하지만 옛 친구와 술 한잔할 여유는 있어야지. 안 그래?”

    이케가 말했다.

    “무슨 일인데?”

    재만이 말했다.

    “압록강을 지키던 경비교관 둘이 죽었어. 머잖아 이 나라에서 일이 터질 거야. 그 덕에 우리는 피곤하게 됐지.”

    “아, 아까 신문에서 봤어. 경비 둘 다 머리가 박살났더군.”

    “총성도 두 번 울렸어. 고위 인사들은 지금 난리가 났지.”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발췌.
 
 
 
 

 지은이 소개

지은이 _ 이준혁
 
저서로는
장편소설 <쫓겨난 짐승>, <괴로운 짐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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