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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안병호 평전
*지은이
: 조한서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280쪽 / 반양장본
*판
형
: A5(국판)
*정
가
: 15,000원
*출판일
: 2020년 9월 5일 <홈으로 가기>
*분
류 :
경제경영 > 재테크/금융 > 부동산
*ISBN
:
978-89-5959-532-7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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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한때 육군참모총장 후보 선두 주자였던 예비역 육군중장 안병호는 지금 경남 진교에서 목부(牧夫)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터인 금오산 자락 1만여 평 농장에 자리한 가옥에는 본채 아래 반지하에 자료실이 하나 있다. 그가 살아온 자취(주로 군 생활을 중심으로)를 더듬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오롯이 정리되어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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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들어서면 눈길을 끄는 사진틀이 하나 있다. 다섯 사람의 사진이 세로로 나란히 들어 있는 사진틀이다. 이른바 ‘5인6박’ 사진이다. 사진틀에 들어 있는 사진 속의 인물은 모두 다섯…….
- 중앙에 있는 사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인물의 주인공이 안병호라는 것은 쉽게 어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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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 양옆으로는 젊은 남녀의 사진이 각각 한 장씩 있다. 왼쪽 남녀는 딸과 사위, 오른쪽 한 쌍은 아들과 며느리이다. 다섯 사람은 모두 대학에서 학위를 수여할 때 착용하는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있다. 그들은 모두 박사 학위 소유자들이다. 안병호는 정치학 박사(경남대), 딸 안혜리는 미술교육학 박사(미주리대), 사위 박광우는 경제학 박사(미주리대)와 경영학 박사(일리노이대), 아들 안성훈은 항공우주공학 박사(스탠퍼드대), 며느리 이선영은 재료공학 박사(UC 버클리대).
- 이렇게 해서 다섯 사람이 가진 박사 학위는 모두 여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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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을 두고 ‘5인6박(五人六博) 사진’이라고 일컫는 것은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 삶의 황금기인 33년을 군인으로 살아온 육군 예비역 중장 출신의 안병호가 이처럼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 가족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뜻밖이고 놀라운 일이다.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부인 김효정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 대학원 과정을 마친 석사이고, 목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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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뜻밖이고 놀라운 것은 안병호가 ‘김대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프로필을 일별하면서 대뜸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그 부분인데, 그래서 그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
- 누면서 몇 마디 대화 끝에 자연스럽게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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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님은 스탠스가 보수 쪽으로 생각되는데, ‘김대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니 뜻밖입니다.”
- 답은 금방 되돌아왔다.
- “나는 보수라기보다 개혁 쪽에 서 있습니다.”
- “……!”
- 당혹스러웠다. 군대에서 잔뼈가 굵고, 살아온 환경이 보수에 가까우리라는 것이 필자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는데, 보수가 아닌 개혁 쪽에 서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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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의 말은 일부 수정되었다. 자신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영 논리에 얽매이기보다 ‘정의 편’이라는 것이다. 보수가 됐든 진보가 됐든 사안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쪽이 자신
- 이 서는 자리라는 이야기였다.
- 처음에는 그가 진실과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헷갈렸는데, 집필을 위해 그에 대한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그와 대화도 계속하면서 ‘헷갈렸던 생각’은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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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는 자신의 사상적 주소에 대해 한 자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육사에 재학하던 시절 윤창하(육사 15기, 육사 교수) 선배의 주선으로 장준하, 함석헌, 천관우, 김준엽, 부완혁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사상계> 쪽 인사들과 잦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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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의 상황을 조금 짚어보기로 하자.
- 그가 육사에 재학할 당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1960년 4월,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학생들의 함성에 이승만 권은 무너졌고, 그해 8월 장면을 국무총리로 하는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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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새 정부가 걸음마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되는 1961년 5월 16일, 정치적 야욕을 가진 군인들이 총칼과 탱크를 앞세워 정권을 탈취했다. 안병호가 육사 2학년 때의 일이다. <사상계> 7월 호에 함석헌의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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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이다. 함석헌의 글 내용을 조금 엿보기로 하자.
- <제 발이 5천년 아파도 아프단 소리 못하고 슬퍼도 목을 놓고 울어도 못 본 이 민중을, 이제 겨우 해방이 되려는 민중을 또다시 입에 굴레를 씌우지 마라. 정신에 이상이 생겼거든 지랄이라도 맘대로 하게 해야 될 것이다. 4·19 이후 첨으로 조금 열렸던 입을 또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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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 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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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사람만이 한다. 학생은 사람 아니다. 그러므로 먼젓번에는 실패했다. 군인도 사람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도 군인이 혁명하려 해서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학생은 그 혁명 4월에 했듯이 사월의 잎이다. 사월은 잎 피는 달이다. 잎은 나무가 아니다. 잎이 나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잎을 피운다. 학생은 잎처럼 푸른 것이다. 4·19의 정신 늘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녹색정신, 그 평화주의, 그 비폭력주의, 그 공명정대주의, 늘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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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간 줄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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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이 잎이라면 군인은 꽃이다. 5월은 꽃달 아닌가? 5·16은 꽃 한번 핀 것이다. 꽃은 찬란하기가 잎의 유가 아니다. 저번은 젊은 목청으로 외쳤지만 이번은 총칼과 군악대로 행진을 했고 탱크로 행진했다. 그러나 잎은 영원히 남아야 하는 것이지만 꽃은 활짝 피었다가는 깨끗이 뚝 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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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이 좀 길었다.
-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5·16의 실패를 정확하게 예언한 함석헌의 혜안이 눈부신데, 어쨌든 군인들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던 때 이런 글이 나왔다는 것은 핵폭탄이 터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군사정변 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의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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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육사 생도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사상계> 쪽 인사들과 교유했다는 것은 파격적인 행보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안병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마오쩌둥 등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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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에게 ‘스탠스가 보수 쪽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의 입에서 서슴없이 ‘보수가 아니고 개혁적’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배경을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안병호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는 육사에 재학하던 4년 동안 정규 과정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과 역사, 한민족의 고대사에서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학문 분야를 섭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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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의 사촌 형이 서울대 국문과 출신이어서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책들이, 그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섭렵하는 독서의 젖줄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안병호가 몸담아온 군대는 개혁보다는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집단이다. 그러므로 그도 그런 집단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기에서 그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사안에 따라 정의의 편에 선다’고 말한 배경을 이해할 만하다.
- 책의 도입부에, 안병호의 사상적 스펙트럼에 렌즈를 갖다 대고 시시콜콜 이야기한 것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양대 거목이었던 김영삼, 김대중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이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안병호는 ‘김대중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가 아닌 그의 정책에 대한 연구이다. 학위 논문의 정확한 제목 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관한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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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 학위 논문을 탄생시킨 김대중과의 관계와 달리 김영삼과의 관계는 좀 시니컬하다. 육군 중장 안병호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자 33년 동안 몸담아온 군대에서 강제 예편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하나회 출신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나회’ 이야기를 조금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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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육사 11기인 영남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최성택 등 7명이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하나회’는 그 모임이 모태가 되어 탄생한 군부내 사조직이다. 하나회는 박정희 군사 정권의 지원을 받아 군부의 요직을 장악하고 조직도 확대 개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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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회’의 중심이 된 것은 육사 11기, 12기생들이다. 그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정예 인원을 규합하여 세력을 더욱 키웠으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12·12 사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등 다단계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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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제5공화국에서도 그들은 군 요직을 차지했고, 노태우 정부 때도 핵심적인 권력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말하면, 군부 내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권력의 시녀가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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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가 ‘하나회’와 인연이 닿은 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어느 날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자신을 하나회 회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안병호의 회상이다. 그는 그냥, ‘선배들이 좋게 생각해서 픽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이 자신의 군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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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별 셋을 달고 있던 그의 군 생활은 시궁창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해 4월 군인 아파트에 하나회 명단이 살포되었고, 그 일은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 첫 희생자가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이었던 안병호 중장이다. 많은 장성 출신 인사들이 김영삼이 당선인이었던 시절 알량한 내용을 정보랍시고 갖다 바치며 온갖 아부를 일삼았다. 안병호도 그랬다면 살아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위는 안병호가 살아온 행적과 한참 거리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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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 전역은 단순히 군복을 벗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보다 험난한 가시밭길이 안병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YS는 안병호가 부정부패에 연루된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미행·감시·도청은 기본이고, 무엇이든 부정부패와 관련된 꼬투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의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 안병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마침내 낙향을 결심한다. 좌절을 딛고 그의 꿈을 키워준 고향 진주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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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가 낙향한 후에도 YS의 감시와 사찰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탈탈 털어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YS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 “안병호가 군대에 있을 때 엄청난 부정을 저지르고, 많은 재산을 축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부정부패나 축재도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안병호는 청렴결백한 사람이구먼.”
- YS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후문을 안병호는 나중에 들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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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흐른 지금 안병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당시는 YS가 참으로 많이 미웠었는데 한편으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세간의 사람들은 더러 안병호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았는데, 김영삼이 ‘안병호 청렴결백한 장군’이라는 도장을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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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안병호가 YS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낙향해서 살고 있는 그의 가옥 반지하 자료실에 걸려 있는 5인6박 사진틀 중앙에 그의 사진이 들어가도록 해준 것이 YS이기 때문이다. 비약이 너무 지나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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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3성장군 안병호가 YS에 의해 강제 전역당해 낙향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의 박사 학위 논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관한 연구」는 탄생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 안병호의 독특하고 파란만장한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인 김영삼·김대중과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는 이 이야기를 첫머리에 올리는 것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이 저서의 프롤로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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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 퇴역당할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무렵의 이야기는 나중에 보다 상세하게 서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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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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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문 <프롤로그>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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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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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쟁이 안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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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는 진주시 진성면 대사리에서 2남(병호, 병익) 2녀(숙지, 숙원)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 당시 농촌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예삿말이 되어 있을 만큼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그런 주변 환경과 달리 그의 집안은 부유했다. 이른바 지주 가문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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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다른 개구쟁이들과 마찬가지로 손발이 부르트도록 동네 골목을 누비며 뛰어놀았고, 부모님이 준 월사금으로 친구들과 사탕을 사 먹거나, 수업을 빼먹고 산등성이 양지바른 묘지 옆에서 놀다가 들통나서 심한 벌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 공부는 썩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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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잘하는 개구쟁이 안병호에게는 좀 어리숙한(?) 구석도 있었다. 그는 걸핏하면 자기 것을 또래들에게 줘버렸다. 입고 있는 옷을 친구가 탐내면 벗어주고, 신고 있는 신발이 ‘좋다’고 하면 ‘너 줄까’ 하며 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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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호에게 사탕 얻어먹고, 좋은 옷이나 신발을 얻어 입고 얻어 신은 또래들은 신바람을 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안병호를 좀 모자라는 애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바보 안병호’라는 별명이 붙었다.
- 걸핏하면 좋은 옷이나 새로 사준 신발을 친구에게 줘버리고 ‘바보’ 소리까지 듣는 병호를 부모님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아니, 달가워하기는커녕 애를 태우고 속상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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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병호가 새로 사준 운동화를 친구 줘버리고 헌 고무신을 신고 들어오면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 쫓아 나왔다. 그럴 때면 병호에게는 달아나 숨을 수 있는 든든한 방패막이 있었다. 바로 사랑채에 계신 할아버지의 등 뒤이다. 할아버지는 병호를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
- 의 등 뒤로 숨어버리기만 하면 병호는 모든 위기를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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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는 남명 선생의 후예이다.
- 남명 조식이 살았던 16세기는 우리 역사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이른바 사림(士林)이라 불리는 지식인들이 성장한 시기이다. 그 대표적인 두 학파가 남명학파와 퇴계학파이다. 두 학파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뉘어 있어 각각 영남우도와 영남좌도를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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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는 실천적인 학문을 중요시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했으며 의義를 앞세웠다. 반면,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성리학을 이론화했고 인(仁)을 숭상했다. 따라서 남명의 제자들은 정의를 높은 가치로 숭상하고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반면 퇴계의 제자들은 학문에 깊이가 있고 겸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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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敬意)를 학문의 실천지표로 삼은 남명의 학풍은 제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민본(民本)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민본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오늘날로 말하면 ‘민주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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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명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할아버지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영향도 받았던 안병호에게도 남명의 실천적인 학풍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그의 삶에 일정한 방향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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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 생략> <본문>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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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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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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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_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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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보 안병호 육사 생도 되다
- 개구쟁이 안병호 _ 24
- 아버지, 인민군에게 총살당하다 _ 27
- 꿈 많은 소년 _ 29
- 육사 시절의 특이한 행보 _ 33
-
- 2. 베트남 전쟁터에서 시를 쓰는 소대장
- 신화 아닌 신화 _ 38
- 전쟁의 소변(素辯) _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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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짝짓기 게임
- 짝짓기 게임 _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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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안장교 안병호
- 군인 가족은 힘겨워! _ 66
- 안기부와의 갈등을 잠재우다 _ 68
- 피복 비리를 파헤치다 _ 71
- ‘박정희 모가지’ 사건과 윤필용 _ 74
- 서빙고 호텔(?)의 윤필용 _ 77
-
- 5. 대통령 박정희의 부대 방문
- 장태완과 안병호 _ 82
- 물고기 물을 만나다 _ 85
- 안병호, 우리 좀 살려줘 _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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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 10·26과 12·12 _ 94
- 안병호와 12·12 _ 98
- 장태완의 비극 _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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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전두환과 하나회
- 박정희가 차 안에서 _ 106
- 토사구팽 _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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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몸을 던져 집권 연장을 막다
- 4·13 호헌조치 _ 112
- 30여인 모임 _ 115
- 출동 명령을 거부하다 _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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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병호의 좌충우돌
- 안병호의 사상적 주소 _ 128
- 안병호의 페레스트로이카 선언 _ 131
- 군의 여성 차별 개선 _ 134
- 전두환에게 직언하다 _ 137
- 노 대통령의 진급 하명을 거부하다 _ 141
-
- 10. 노태우와 안병호
- 군인으로서의 노태우 _ 146
- 정치인 노태우 _ 153
- 실패한 도전 통합군제 _ 162
- 벌컨포대 서울 외곽 이전 _ 165
-
- 11. 안병호가 본 김영삼
- YS와 하나회 _ 170
- 이것이 개혁인가! _ 174
-
- 12. 나의 살던 고향으로
- 낙향 _ 182
- 부창부수(夫唱婦隨) _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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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정치로 풀 수밖에!
- 자민련 입당 _ 194
- 국회의원에 출마하다 _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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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몇 가지 이야기
- 노태우가 찾은 집 그리고 한화갑을 말한다 _ 206
- 동생을 잃다 _ 210
- 딸이 쓴 편지(1) _ 213
- 딸이 쓴 편지(2) _ 218
- 아들의 편지 _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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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양세봉과 김시민
- 양세봉 장군을 기리다 _ 224
- 진주대첩제 _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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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새로운 도전
- 만학도(晩學徒) 부부 _ 238
-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관한 연구 _ 242
- 『생명의 끈』 _ 247
- 교회를 세우다 _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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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목부의 노래
- 목부(牧夫)의 노래 _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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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_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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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호가 걸어온 길 _ 278
- 개인 훈장·표창 _ 279
- 참고한 자료들 _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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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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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_ 조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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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소년중앙문학상, 공보부신인예술상,
- 사이버문학상 대상, 한국인터넷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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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저서로 『평화를 사랑한 아름다운 사상가 함석헌』, 『고난의 언덕에 핀 꽃 김대중』,
- 『두밀리 자연학교의 ET할아버지 채규철』, 『겨레의 마음에 별이 된 시인 윤동주』,
- 『우리 친구 마우마우(1, 2)』, 『공부 없는 나라』, 『핑계 생쥐 쫓아내기』,
- 『일등만 하는 원숭이』, 『유토피아를 꿈꿀 필요없는 세상』, 『황해도 멀리서 보면 쪽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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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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