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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오인보와 화서촌

*지은이 : 이 래 호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247쪽 / 반양장본 / 본문 올컬러 인쇄

*판   형 : 국판

*정   가 : 15,000원

*출판일 : 2015년 7월 10일     <홈으로 가기>

*분   류 : 인물>

*ISBN   : 978-89-5959-422-1 03910

 

 이 책은?
 
중국의 최고 부자마을 천하제일촌 화서촌!
대한민국 언론은 인구 3만 명인 중국의 작은 농촌 마을 화서촌과
지도자 오인보 촌서기를 지난 20년간 무려 100회 넘게 보도했다.
 
나는 한국 언론에 보도된 아버지 오인보 서기와 화서촌 관련 100여 편의 기사를 편집하여 선물하기 위해 수많은 밤을 낮같이 보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태풍으로 무산된 오협은 회장의 한국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는 초청 편지를 보냈다. 오협은 회장이 고성에 와야 할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였다.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간곡함을 담아 보낸 편지에 화답이라도 하듯 11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오 회장의 고성군 공식 방문이 이루어졌다. 나는 입국에서 출국까지 오협은 회장과 줄곧 함께하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면 때로는 선물이 주연이 되고, 대화의 소중한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주고받는 선물은 그 무게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담긴 마음이 중요하지 않던가. 나는 고성 군청에 내가 따로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알려 드렸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대학에서 오인보 서기와 관련된 강의를 하려고 수집한 언론 기사였다. 이렇게 모은 기사들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정리하고 출처와 보도기자 이름 등 원본 그대로 인용하여 ‘화서촌 한국언론 20년’이라는 제목으로 편집하였다.
그 내용은 한 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그것도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보도 기사였다. 타국에서 보도된 아버지 관련 자료를 손에 받아 든 아들은 쉽사리 멈출 것 같지 않은 ‘흥분’에 싸여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순간 아들에게는 20년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겁고, 눈물보다 더 애틋한 감정선이 지나갔을 것이다.
 
생각해 보았는가? 억만장자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마음에 차겠는가?
오협은 회장은 나에게 은(銀)으로 된 황소상과 『오인보 잠언』이라는 책을 선물했다. 나는 선물받은 책을 이동하는 차 속에서도, 호텔에서도 읽었다. 책 속의 글 한 줄 한 줄이 마치 『논어』 같은 가치가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오인보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중국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오 회장에게 아버지 오인보의 모든 것을 담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오협은 회장은 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화서촌의 홍보 책임자가 각종 연설문 원고와 사진 등 내가 요구하는 자료를 보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일반인이 접하기 힘든 오인보 서기의 귀중한 사진까지 보내준 데에는 이왕 책을 출판할 것이면 제대로 잘 만들어 보라는 격려의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인보에 몰두하고 그의 사상과 인생을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는 비단 내가 중국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어찌 보면 단 한 번 만남을 가진 게 전부인데 오인보에게 이렇게 깊이 빠지다니….
 
하지만 화서촌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인보 서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화서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인보라는 인간에 대한 매력과 오인보식 언어와 오인보식 행동에서 배우는 실천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인보 철학과 경영을 묶어 오인보 오학(五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오학이란 오인보 실증학, 오인보 언어학, 오인보 경영학, 오인보 행동학, 오인보 인간학을 뜻한다.
오인보학(學)은 사람이 모여서 살고 오인보가 만든 화서촌과 화서촌이 만든 오인보가 결합된 학문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에 지침이 되는 또 하나의 가로등이자 마중물이다. 오인보담(談)은 오늘 우리 곁에 필요한 21세기 신논어(新論語)이다.
<생략>
 
- <프롤로그>중에서 발췌
 
 책속으로...
 
2) 화서촌과 오인보
오인보의 일생은 불행한 소년기, 당과 국가를 위해 바친 청·중년기, 인민과 마을을 위한 장·노년기로 구분할 수 있다. 오인보가 태어나자 여느 부모가 그러하듯 부모는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갓난아기는 둥그런 얼굴에 첫눈에도 재물을 끌어들일 복상이었다고 한다. 부모는 아기가 성장하면 소와 양이 무리지어서 집으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하며 아이의 운명도 분명 부자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일찍부터 아이의 운명을 예감한 부모는 아이가 장성하여 부를 이루고 나면 인자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인보(仁寶)라 지었다.
 
가난한 살림 속에 오인보의 모친은 일곱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어릴 때 아이가 병들어 죽거나 물에 빠져 죽기도 하는 등 불운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더라도 워낙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느라 제대로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집으로 보내야 했던 형제들도 있었다.
그래도 오인보는 친척의 도움으로 3년 동안 사숙하러 다니면서 삼자경(三字經)과 백가성(百家姓)을 공부해 글자를 깨우쳤다. 그는 도시 아이들이 편안하게 학교에 다닐 나이인 11살에 이웃 집의 소를 키워주면서 품삯을 받는 머슴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4살에는 고기를 잡아 장사하여 집안일에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고 20살 되던 해 오인보는 돈을 벌기 위해 상해에 가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대도시는 시골에서 올라온, 세상물정 모르는 오인보에게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오인보는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또 힘센 지역의 텃세에 재산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그는 온갖 험한 일을 겪고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더 이상 가난한 고향과 현실을 불평하지 않았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중국 사회는 물론 농민의 생활도 아주 힘든 시기였다. 신중국이 추진한 토지개혁은 국가에서 균등하게 토지를 분배하였다. 농촌 주민은 작은 땅을 분배받아 열심히 농촌 일을 하지만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때 오인보는 군인이 되면 돈도 벌 수 있고 가정에 짐도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군대를 지원하였지만 관절염 때문에 입대하지 못하였다. 대신 동생을 군에 입대시킨다. 오인보는 어쩔 수 없이 화서촌의 마을에 머물면서 토지개혁이나 농업 합작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정부 정책이나 추진 내용을 반대하는 사람을 지혜롭게 설득하여 반대편 사람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여 마을 주민의 주목을 받는다.
 
1958년 대약진운동 때 표면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였지만 자기 능력과 책임 범위 안에서 소극적이지만 국가정책에 반대하였다. 농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택하는 것은 농민을 위하는 정책이나 제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대약진운동이 펼쳐졌던 시기에 오인보는 타인의 말을 잘 듣는 기술을 배워 훗날 마을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실사구시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리고 틀린 것은 무조건 따라 하지 않는 것이며, 자기의 현재 상황에 맞춰서 정책을 펼치고 추진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대약진운동이 전개된 1960년에는 자연재해까지 발생하여 중국을 더 힘들게 하였고 화서촌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무서움과 두려움까지 가세한 참 어려운 시기를 힘겹게 보냈다. 오인보는 고민하였다. 분명 모택동은 오직 인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 오인보는 정답을 찾았다. 그것은 ‘틀렸다’였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틀렸나를 찾아야 했다. 농민이 틀렸나, 농촌 간부가 틀렸나, 공산당이 틀렸나. 오인보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이런 깊은 고민은 농촌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화서 촌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화서 촌민 모두가 부유하도록 집체 경제를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중략>
 
그 다음 오인보가 추진한 일은 마을에 엔진 기계가 있으면 더 빠르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기계를 사서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계를 설치하고 보니 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기술자가 없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오인보는 새로 사온 기계를 그냥 방치해 두다가 1963년 외부에서 기술 인재를 영입하였다. 그는 이 기술자가 기계만 관리하게 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 결과 화서촌 마을에는 많은 엔진 전문기술자가 양성되었다.
소형 발전기로 맷돌을 갈아서 하던 공정을 기계를 사용하니 생산력이 더 높아지는 결과를 오인보 스스로 체험하였다.
1965년에는 돌로 된 방앗간의 맷돌을 쇠로 된 맷돌로 바꾸면서 효율을 더 높여 나갔다. 오인보가 개혁 정책으로 처음 시작한 방앗간 업무는 성공하였고 그 의미는 컸다. 현재 홍보되고 있는 화서촌의 초근(草根)공업은 맷돌 기계공업이다. 이 초근공업의 용품은 지금도 화서촌에 보관하고 있다. 또한 오인보는 농업을 중심으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 수리 건설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추진하였다.
다음으로 시작한 것은 사료 가공 공장의 운영이다. 이 정책은 사료 공장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
 
<중략>
 
“1990년대 화서의 발전은 중단이 없었다. 19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 공표 이후 오인보는 중국의 가장 큰 목표가 전 국가 경제의 성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였다. 오인보는 등소평이 남순강화를 공표한 다음 날 새벽 당 간부를 소집하여 또다시 화서촌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창업과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이때부터 오인보의 사상과 오인보식 경영 방향이 적용되면서 화서촌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마침내 1999년, 21세기를 앞둔 화서촌은 또 하나의 역사적 기록을 남긴다. 화서촌 마을 기업을 심천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이다. 2012년 현재의 화서 집단 자산은 160억 위안으로 추정되며 금융, 관광, 철강, 해운, 식품 등 모두 60개 가까운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룹 내 전체 생산 품목은 1,000여 개이며 2012년 매출액 500억 위안대 규모로 성장, 중국 내 기업집단 98위 국가 대형 향진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하생략>
 
-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차례
 
프롤로그 _ 7
격려사/이인제 _ 14
격려사/이찬규 _ 16
 
Ⅰ. 화서촌과 오인보
1. 화서촌 _ 25
1) 화서촌 54년 _ 25
2) 화서촌과 오인보 _ 29
 
2. 오인보 _ 40
1) 오인보의 85년 인생 _ 40
2) 오인보의 아내 _ 49
3) 오인보의 자녀 _ 52
 
3. 이래호가 만난 오인보 _ 54
 
Ⅱ. 오인보의 말과 글
 
1. 오인보식 언어의 매력 _ 61
1) 유머와 깊이가 있는 언어 _ 61
2) 인품이 있는 언어 _ 62
3) 지혜가 있는 언어 _ 63
4) 호쾌한 언어 _ 64
5) 정곡을 찌르는 언어 _ 65
 
2. 오인보 대표 어록 _ 66
1) 화서촌을 사랑하라 _ 66
2) 모범(模範)이 되어라 _ 67
3) 남과 달라야 한다 _ 68
4) 항상 예측(豫測)하라 _ 71
5) 감각(感覺)을 가져라 _ 74
6) 역행(逆行)하라 _ 76
7) 도리(道理)를 알라 _ 79
8) 상대에게 응답(應答)하라 _ 81
 
Ⅲ. 오인보와 화서촌이 남긴 영향
 
1. 지도자가 평가한 오인보와 화서촌 _ 87
1) 국가에 남긴 영향력 _ 87
2) 정치에 남긴 영향력 _ 90
3) 시대, 사회에 남긴 영향력 _ 91
4) 언론, 국제, 지역에 남긴 영향력 _ 92
5) 학원, 고향, 정신에 남긴 영향력 _ 94
 
2. 오인보의 주요 저서 _ 95
1) 오인보 평전(吳仁寶評傳) _ 95
2) 화서기사(華書紀事) _ 96
3) 화서의 길(華西道路) _ 96
4) The Road of HuaXi _ 97
5) 오인보 잠언(吳仁寶箴言) _ 97
6) 사회주의부 화서(社會主義富華西) _ 97
7) 오인보 문집(吳仁寶文集) _ 97
8) 화서 영향력(華西影響力) _ 98
Ⅳ. 논어 곁에 선 오인보의 잠언
 
1. 논어(論語)와 잠언(箴言) _ 101
 
2. 자신을 위한 잠언 _ 104
1) 바른 생각 _ 104
2) 맑은 생각 _ 106
3) 수신(修身) _ 110
4) 제가(齊家) _ 112
5) 행복의 만족 _ 115
6) 명예와 좌절 _ 122
 
3. 지도자를 위한 잠언 _ 126
1) 공직자의 길 _ 126
2) 농촌을 다스리다 _ 131
3) 농촌을 변화시키다 _ 136
4) 원칙 있는 능력 _ 138
5) 원칙 있는 관리 _ 140
6) 원칙 있는 소신 _ 141
 
4. 교육을 위한 잠언 _ 144
1) 인재 활용 _ 144
2) 교육 방법 _ 147
3) 실사구시 적용 _ 149
 
Ⅴ. 화서촌과 오협은
 
1. 세계로 가는 황소 _ 156
1) 화서그룹 2대 회장 오협은 _ 156
2) 오협은의 언어와 행동 _ 159
3) 이래호가 만난 오협은 _ 160
 
2. 화서그룹 소개 _ 163
1) 사회주의 속 자본주의 경제 발생지 화서그룹 _ 163
2) 화서그룹의 주요 기업 _ 168
 
3. 한국에서 본 오인보와 오협은 _ 183
1) 오인보의 한국 언론 보도 20년 _ 183
2) 오협은과 경남의 인연 _ 192
 
부록/화서촌을 가진 중국
 
1. 강소성과 천하 제일촌 화서촌 _ 212
1) 강소성 _ 212
2) 강소성의 주요 도시 _ 214
3) 화서촌의 지리적, 공간적 위치 _ 218
 
2. 화서촌과 중국 농촌 _ 224
1) 중국 농촌의 변화 _ 224
2) 중국 농촌의 특징 _ 226
3) 화서촌과 중국 농촌 경제 _ 232
4) 등소평의 개혁 개방 시기 _ 243
 
지은이 소개
 
지은이 _ 이래호
 
저자는 1세대 중국 전문가로 한중수교 직후부터 중국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북경 대외경제 무역대학 고급 무역반 연수를 시작으로 30대 기업인 거평그룹 중국 지사장 및 그룹 현지 투자법인 중국 연태태화무역유한공사 총경리를 지냈다. 법인 설립에서 청산까지 단독 처리하여 외국인의 중국 투자기업법에 남다른 경험을 축적하였다.
한양대학교에서 중국학을 전공하여 국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창원대학교 국제무역학과, 중국학과 그리고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겸임 교수를 역임하였다. 창원대학교 산학협력단 중점 교수로 재직 중 공기업인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 본부장으로 임용되어 경남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경남의 관광지를 해외에 홍보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중국 산동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산동성 도시별 투자 환경을 분석한 『산동성에서 장보고를 만나다』와 산동성 도시별 관광 환경을 소개한 『산동여유-산동을 관광하다』, 중국인의 사회 문화 등 소소한 내용 150여 가지를 담은 『이래호의 중국이야기-차부다(差不多)』를 출간하였다.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들의 적응 양태를 최초로 연구하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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