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나만의 사모곡

*지은이 : 임수철

*발행처 : 한솜미디어

*쪽   수 : 216쪽 / 반양장본 / 본문 흑백인쇄

*판   형 : A5(국판)

*정   가 : 13,000원

*출판일 : 2026530    <홈으로 가기>

*     류 : 국내도서 > 문학 > 에세이

*ISBN   : 978-89-5959-604-1 (03810)

 이 책은?

저의 세 번째 에세이집입니다. 음악 관련 추억의 글 위주로 엮어 보았습니다. 추억은 참으로 소중한 인생의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억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이자 특권입니다. 그런데 추억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추억이 과거 지향적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억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이지, 추억 그 자체는 빛나는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피천득 선생도 추억과 관련하여 이렇게 주장하신 바 있습니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보물의 세목(細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것과 같다.
- 피천득 수필, 「長壽」 중에서
 
그렇습니다. 추억은 빛나는 보물과 같은 것입니다.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란 명수필도 추억의 산물이 아니었겠습니까?
우리 민족을 가무(歌舞)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풍류의 민족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음악 추억 몇 개쯤은 모두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저의 부족한 글들이 음악 추억 공감의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본문 <책을 내며>에서 발취
 
 책속으로...
 
<관악부에서 겪은 황당 돌발 사건들>
 
 
(1) 폐기 처리할 헌 악기들 덕분에
나의 관악부 지도교사 생활 21년은 참 많은 일들을 겪었던 세월이었다. 수업만 하는 음악 교사였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속초고에서 근무할 때 겪은 일이다. 거센 빗속에서 시내 퍼레이드 행사를 치른 적이 있었다. 외부 요청 행사였는데, 사실은 비 때문에 불참하려던 행사였었다. 우중 행사는 참가하지 않는 게 최선책이다. 악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리넷이나 색소폰 같은 목관 악기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그런 난감한 상황에서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당시 속초고 악기실 한쪽 구석에는 헌 악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강원도민체전이 속초에서 치러졌던 1994년, 그해 속초고 관악부는 속초시청의 지원금으로 악기를 모두 새 악기로 교체했었다. 기존 파트의 악기는 물론이고, 피콜로·바리톤 색소폰·프렌치 호른 등등 전에 없었던 악기들까지 새로 들여왔었다. 130% 수준의 대대적인 악기 구입이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지원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었다. 그 지원금도 학교 예산에 비하면 아주 거액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악기를 모두 구매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런데 공개 입찰로 악기를 구매하면서 정말 최상의 조건으로 낙찰이 된 것이다. 예상 구매가보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낮은 가격으로 낙찰이 되었는데, 그 바람에 개교 이래 가장 많은 악기들을 그렇게 한꺼번에 들여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속초고 관악부 악기실은 새로 구입한 악기들로 인해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였었다. 게다가 기존에 사용하던 헌 악기들까지 쌓여 있어서 더욱더. 그런데 그 헌 악기들 중에는 쓸 만한 악기들도 꽤 있었다. 바로 ‘그 악기들을 활용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던 것이다. 그 헌 악기들은 행정절차를 밟아 어차피 폐기 처리해야 할 악기들이었다. 그래서 그날 그 행사는 그 헌 악기들 덕분에 무사히 잘 치를 수가 있었다.
 
(2) 악보도 없고 곡도 못 외우는데
속초상고(지금의 설악고)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일이다. 그때도 교내 행사가 아닌, 외부 행사 지원을 나가서 겪은 일이다. 장소는 속초공설운동장이었다. 여느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도 행사 진행자부터 만났다. 그리고 그 행사에서 관악부가 연주해야 할 곡들을 하나하나 확인 점검했다.(※연주 예정곡들은 행사 주최 실무자와 사전에 미리 조율을 해 놓는다. 그리고 행사 당일 현장에서는 진행자와 최종 확인을 한다.)
그런데…. 연주 예정곡이 아니었던 「묵념곡」도 연주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동안 행사 때 여러 번 연주했던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큰 부담없이 관악부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었다.
“묵념곡도 준비해라, 예정에는 없었지만 연주해달라고 하더라!”
그런데 트럼펫 파트 부원들이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묵념곡은 오늘 연주 안 한다고 해서 악보도 안 챙겨 왔어요.”
그리고 그 곡 악보도 못 외운다고 했다. 10여 분 후면 행사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총알택시를 타고 가도 학교에 있는 그 악보는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그 많은 파트 중에 하필이면 트럼펫 파트가?’
관악 합주에서 묵념곡은 트럼펫 파트가 주선율인 곡이다. 따라서 트럼펫 파트가 연주 불가능이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트럼펫 파트가 빠진 묵념곡 연주는 주인공이 빠진 연극 공연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난감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10분 내로 트럼펫 악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선지도 없었다. 오선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운동장 바닥에 놓여 있던 종이박스가 불쑥 눈에 들어왔다. 그 종이박스는 피로 회복제 음료 박스로 관악부원들을 위해 행사 주최 측에서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 종이박스를 뜯어 뒷면에다 급히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필체는 괴발개발 아주 악필(惡筆)이었다. 하지만 속필(速筆)이었다. 덕분에 악보를 만드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그 행사는 그렇게 무사히 잘 치를 수 있었다.(요즘 같았으면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도 있었겠다.)
 
(3) 큰일 났어요, 3학년 형들이 한 명도
거진종합고(현재의 거진정보공고)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일이다. 역시 외부 행사였는데, 10월 어느 공휴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장소는 거진공설운동장이었다. 여느 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날도 조금 일찍 출근을 했었다. 그런데 평소 행사 때보다 등교한 관악부원들이 아주 적었다. 그러고 보니 악장(樂長)을 비롯하여 3학년 부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잠시 후 알게 되었는데, 3학년 부원들이 그날 행사에 모두 불참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랬다. 2학기 중반이 지나 3학년들이 물러날 때가 슬슬 가까워지자 2학년들이 선배 말을 잘 안 듣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끼리 서로 마찰도 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래, 2학년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으면 행사도 너희들끼리 잘 치러봐라!”면서 3학년 부원들이 그날 그 행사에 불참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파업이었다.
지도교사였던 나는 말할 것도 없고, 2학년 부원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3학년 선배들이 진짜 그렇게 행사에 불참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날 행사, 정말 어렵게 치렀었다. 한 곡 한 곡이 연주될 때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아주 중요한 시합에서 주전 선수들이 모두 빠지고 2군 선수들로 치러야 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2학년 부원들은 그날 그렇게 어렵게 행사를 치러 내면서 3학년 선배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아주 절실하게 깨달았었다. 그래서 늦게라도 3학년 선배들이 행사장에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3학년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 마음이, 지도교사인 나보다 더 간절했을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3학년 부원들의 불만이 그런 방식으로 표출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싶다. 그런 방식이 아니었으면 자칫 큰 구타 사건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관악부의 선후배 간 규율이 얼마나 엄한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4) 실종된 은색 트럼펫의 행방이
관악부 지도교사로서 나의 첫 근무 학교는 양양고였었다. 양양고에서는 1988년 3월 1일부터 1992년 2월 말까지 4년간을 근무했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많았었다. 관악부 지도교사로서 완전 초짜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욕만 넘쳤던 것 같다.
양양고에서 근무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악기 구입 문제였다. 양양고 관악부는 오랜 전통도 있고, 연주력도 아주 뛰어났었다. 그런데 내가 근무하던 당시 악기 사정은 너무 열악했었다. 쓸 만한 악기가 몇 대 안 되었다. 대부분이 낡은 악기 아니면 비(非)메이커 악기였다. 하지만 악기는 고가품이라 학교 자체 예산만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악기 구입이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악기 구입을 위해 서울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중고 메이커 악기 두 대 정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당시만 해도 현금 거래를 했었는데, 그 돈은 동문 체육대회 때 동문들께서 십시일반으로 모아 준 후원금이었다.)
서울에 그 유명한 낙원상가의 악기점으로 갔었다. 가 보니 정말 탐나는 악기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악기 저 악기 두루두루 눈 쇼핑을 하고 있는데, 악기사 사장님께서 어떤 트럼펫 한 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거 요즘 새로 나온 일제 트럼펫입니다. 학교 관악부용 모델 트럼펫인데, 디자인도 예쁘고 가격도 아주 저렴하게 잘 나왔어요!”
사장님 말씀대로였다. 그 트럼펫은 디자인도 예쁘고 기존의 메이커 트럼펫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26만 원이라고 했다.(※요즘 시세로는 대략 70-80만 원대 정도) 그리고 은색(銀色) 도금에다 가볍고, 소리도 편하게 잘 났다.
‘저거 사 가지고 가면 트럼펫 파트 애들이 무척 좋아하겠는데….’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사장님이 추천해 준 그 트럼펫이 눈에 자꾸 어른거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양양고 관악부 트럼펫 파트에는 좀 괜찮은 메이커 트럼펫이라곤 겨우 한 대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비(非)메이커였다.
 
사장님은 그 트럼펫을 일단 가져가고 결제는 나중에 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날 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학교에다 아무런 얘기도 안 하고 그 트럼펫을 덜컥 가지고 온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트럼펫 파트 아이들은 좋아서 난리였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황당하다는 표정이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돈 천 원이라도 공식 절차를 밟아서 지출해야 하는 게 공금인데, 몇십만 원짜리 악기를 그렇게 가져와 버렸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학교 살림을 맡고 있는 행정실장님의 눈총과 야단은 일단 피해갈 수가 있었다. 당시 행정실장님은 얼굴을 통 볼 수 없었다. 승진 시험 준비를 하느라 자가 연수 중이라고 했다.
그 트럼펫의 외상값은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장님이 모두 바뀌고 난 그다음 해에 결제를 했다.
“이건 내 있을 때 외상값도 아닌데 왜 이걸 갚아야 하지?”
후임 행정실장님은 이렇게 투덜대면서 결제 도장을 찍어 주셨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들여온 새 트럼펫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연습 시간에 그 트럼펫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주말에 집에서 연습하려고 가져갔다가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고 했다.
“그래? 그럼 내일 당장 가져와!”
그런데 그 트럼펫은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계속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 열흘 정도 지나서야 그 트럼펫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 내막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 트럼펫을 분실했었다고 했다. 악기가 새것이고 예뻐서 누가 훔쳐 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관악부원들은 자기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그 트럼펫과 똑같은 것을 다시 산 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문득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그 무렵에 악장이 찾아와 느닷없이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 악기 관리대장에 악기 번호도 적혀 있나요?”
상식적인 얘기지만 악기에는 ‘시리얼 넘버’라고 하는 각각의 고유 번호가 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이다. 그 번호를 통해 그 악기의 생산 연도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따라서 중고 악기를 살 때는 그 번호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까 당시 양양고 관악부 악장(그 악장 이름 공개는 부득이 생략)은 악기의 고유 번호에 대한 기본 상식이 있었던 같다. 그래서 악기의 그 고유 번호가 자신들의 완전 범죄(?)에 걸림돌이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 < 이하 생략> -
 
- <본문> 중에서 발췌
 
 이 책의 차례
 
 
책을 내며/ 4
 
제1부 드뷔시의 달빛
 
관악부에서 겪은 황당 돌발 사건들/ 10
그런 연주는 두 번 다시/ 19
깡패 선생님의 음악 순정/ 28
꼬마 낭만주의자/ 41
나만의 사모곡/ 44
나팔 귀신에 씌어서/ 93
냄비 뚜껑과 방구 나팔/ 103
네 살 싱어송라이터 순옥이/ 109
드뷔시의 달빛, 그 진가를 몰라보고/ 123
 
제2부 미완의 음악
 
미완의 음악교육 연구/ 131
사막의 오아시스, 음악 시간/ 142
속초고 관악부의 그 시절 그 사건/ 147
우리 동네 기타 맨/ 156
육자배기의 맛과 멋도 모르면서/ 160
이상한 말, 그것이 노래/ 167
지키지 못한 그 음악 약속/ 170
체육과 여학생의 연가(戀歌)/ 182
코믹 래퍼 막내 외삼촌/ 198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의 호칭이/ 205
해군 군악대와 해병대 군악대/ 209
형과 잃어버린 하모니카/ 213
 

 

 지은이 소개

지은이_ 임수철
 
-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초등 2년생이던 1965년 7월
   강원도 속초로 이주
- 2016년 10월, 51년 3개월 만에 유년 시절 추억의 고향
   진해로 돌아옴
 
- 강원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및 경희대 대학원(작곡 전공) 졸업
- 『거문고의 遺音的 道器哲學 硏究』 로 강원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 취득
 
- 제1회(1984년)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제5회(1993년) 속초시 문화상, 국악 유공자 표창(문체부 장관상),
   창조문학신문 수필 신인상 등 여러 상 수상
 
- 국악 감상해설서 『O.K 國樂』 1·2권, 음악 평론집
   『음악적 오류와 오해』, 대학·대학원 전공 교재 『가곡 작곡법』 등
   여러 저서 집필 출간
 
- 교향시 「잃어버린 전설」, 합창곡 「속초 아리랑」, 연(連)가곡
   「대포동 窓」, 기타 독주곡  「육자배기토리 애곡」 등 150여 곡의
   창작곡이 있으며, 「거문고 산조의 슬픔 철학」, 「절대음감에 대한
   오해와 편견」 등 300여 편의 음악평론 발표
 
- 개인 작곡발표회 3회, 『임수철 창작 예술가곡』  CD음반 1·2집 및
   『임수철 창작 기타곡』  CD음반 1·2집 출반
 
-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25년간 근무, 강원도교육청
   음악교육과정 연구위원 및 교원 연수원 강사 역임
 
- 2026년 현재 한국음악평론가협회 이사, 한국작곡가회 회원,
   음악평론 전문지 월간 『리뷰』 평론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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